Evgeniya Dudnikova
[아츠앤컬쳐] 칠레 산티아고에서 거주하며 활동 중인 러시아 모스크바 출신의 작가 예브게니야 두드니코바(Evgeniya Dudnikova)는 회화, 조각, 설치 작업을 통해 그녀가 위치한 지역의 사실적인 묘사와 신화의 알레고리를 뒤섞어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리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안데스산맥, 아콩카과산, 아타카마 사막 등, 작가가 그려낸 광활한 대지의 풍경은 현재 칠레에서 작업을 이어가는 그녀의 탐험가적 기질과 환경을 연상케 한다. 도상에 등장하는 말과 별 모양의 패턴, 혜성과 날개 달린 천사의 모습은 은밀하게 작가의 관심사인 신화적 모티프를 소환한다.
칠레로 이주하여 칠레의 원주민 마푸체(Mapuche) 신화에 깊은 관심을 보인 작가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앞선 신화를 자기만의 것으로 탈바꿈시키는데, 이는 말을 타고 놀며 지낸 유년기의 회상과 그 말을 자기 자신으로 삼기도 하고 혹은 영험한 동물로서 갈 길을 점지해 주는 열쇠로도 묘사한 이유다. 이처럼 작가는 자연을 향한 경외와 존중을 바탕으로 입체적인 서사로의 전개를 도모해 왔다.
한편, 유목을 암시하는 이동식 주거 형태와 인물의 의상은 러시아 태생인 작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러한 서사의 혼재는 신화의 패턴이 꿈의 패턴과 일치한다는,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의 말을 빌리자면, 오랫동안 의혹의 대상이 되어 왔던 고대적 인간의 기괴한 환상은 극적으로 현대인 의식의 표면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일례로 작가에 대한 평가는 융(C.G.Jung) 심리학과의 유사성이 강조되곤 하는데, 각 지역의 신화에는 집단 무의식에 의한 공통된 원형적 모티프(archetypal motif)가 존재한다는 융의 말마따나 두드니코바의 작업은 피부에 스민 러시아 문화의 전형과 칠레의 생경한 신화 그리고 그녀의 상상력 사이의 공통분모가 무의식적으로 감지된다. 즉 작가의 몽상적 사고가 신화적 사고로 변모하는 그 과정에서, 작업은 현실이 되기도 환상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유라시아 유목민의 전통 가옥 유르타(Yurt)와 의복 델(Deel)은 작업 전반의 생활 양식으로 등장해 칠레의 자연과 동화되고, 권력, 부, 이동 수단 등의 다면적인 의미를 내재한 말은 <Stars over Aconcagua>에서 그 몸을 감싼 천 너머로 산봉우리가 겹친 형상을 띤다. 이러한 모호함은 반/불투명한 인물을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서 있게 하며, 나아가 그 경계를 얇고 또 얕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장치가 된다.
글 | 최태호
독립 큐레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