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Baran

Peter Baran, 2025, TAIWAN ONLY series, Ya Tung concrete mixture, Variable size / Photo courtesy of the artist
Peter Baran, 2025, TAIWAN ONLY series, Ya Tung concrete mixture, Variable size / Photo courtesy of the artist

 

[아츠앤컬쳐] 오는 7월 개최되는 ‘제13회 울산 국제 목판화 페스티벌’에서 커미셔너로 참여하며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할 슬로바키아 출신 아티스트 피터 바란(Peter Baran)은 콘크리트를 매개로 동시대 도시의 기억과 정체성을 탐색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그의 최근 연작 <TAIWAN ONLY>는 대만 타이난 지역의 폐건축물에서 수집한 황편백 목재의 흔적을 콘크리트 표면에 새겨 넣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물질의 표면에 남겨진 나뭇결은 마치 나무가 자라난 산의 풍경을 연상케 하며, 이 유기적 형상은 재생산된 콘크리트 속에서 반복되고 호흡을 되살린다. 이번 울산 국제 목판화 페스티벌의 주제인 ‘다중의 기억술’은 피터 바란의 작업과 깊이 맞닿아 있다. 콘크리트라는 산업사회의 상징이 목재의 유기적 흔적을 덮는 구조는, 곧 현대 도시가 전통의 시간성과 충돌하며 스스로를 재구성해 나가는 과정을 은유한다. 인공적 재료 안에 각인된 목재의 흔적은 마치 판화의 목판처럼 과거의 기억을 복제하고 전사하는 기호로 작동한다. 여기서 ‘다중’은 단순한 재료의 반복성을 넘어, 문화적 혼종성과 기억의 층위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확장된다.

<TAIWAN ONLY>는 도시의 풍경을 시각화한 동시에, 그것을 구성해온 문화와 재료, 감각의 집적을 담은 조형적 고백이다. 타이난에서 실제로 생산된 콘크리트를 사용함으로써 바란은 도시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 자체를 조각해낸다. 콘크리트가 목재를 덮는 구조는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이 밀려나고 지워지는 현실을 상징하며, 작가는 그 흔적을 되살려 표면 위에 다시 각인 시킨다. 이는 일종의 ‘기억의 목판화’이자, 조각이라는 방식으로 구현된 시각적 판화다. 울산 또한 선사시대 반구대 암각화에서부터 산업도시로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다층적인 기억을 품은 장소다. 피터 바란의 조각은 울산의 정체성과 중첩되며, 목판화라는 매체가 지닌 반복, 기록, 기억의 개념을 새로운 물성으로 확장시킨다. 산업과 자연, 전통과 현대, 개인과 도시의 기억이 교차하는 그의 작업은 혼합현실의 시대에 예술이 직면한 정체성과 시간의 문제를 날카롭게 응시하고 있다.

 

글 | 최태호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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