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공유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슬로바키아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오랫동안 헝가리의 지배하에 있었고,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Bratislava)의 당시 이름은 독일어로는 프레스부르크(Pressburg), 헝가리어로는 포죠니(Pozsony)였다.
브라티슬라바와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Wien) 간의 거리는 약 60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기차편으로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하는 경우 미하엘 성탑문을 통해 구시가지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성탑문을 통해 마치 개선문 통과하듯 지나면 바로 앞에 품위 있고 아담한 골목길 미할스카(Michalska)와 벤투르스카(Ventúrska)가 뻗어있다.
벤투르스카 11번지의 황갈색 건물 데 파울리(De Pauli) 궁의 외벽에는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를 기념하는 명판이 붙어있다. 슬로바키아어로 된 명판 문구를 번역하면 <9살에 이 연주회를 발판으로 개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이다. ‘개선의 길’이란 바로 소년 리스트가 음악가로서 대성공의 길을 내딛게 된 것을 말하는데, 사실 그가 데 파울리 궁에서 가진 독주회 이후 그의 앞날은 결정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리스트는 1811년에 당시 헝가리 땅 도보르얀(Doborján), 현재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라이딩(Raiding)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을 헝가리식으로 표기하면 Liszt Ferenc (리스트 페렌츠)이다. 그의 아버지 아담 리스트는 헝가리 귀족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토지 관리인으로 일하면서 후작의 궁정 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연주하곤 했다. 아버지로부터 음악적 소질을 물려받은 어린 리스트는 6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자마자 신동으로 주목받다가 9살이 되던 1820년 10월에 헝가리 소도시 쇼프론(Sopron)에서 생애 첫 독주회를 가졌고, 이어서 11월 26일에는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의 데 파울리 궁에서 독주회를 가졌다. 그러니까 슬로바키아에서는 첫 독주회였던 것이다.
이 연주회에는 당시 이 도시의 귀족이란 귀족은 모두 참석했다. 그들 앞에서 리스트는 베토벤의 작품을 연주한 다음 즉흥연주를 했다. 또 몇몇 귀족이 그에게 내민 난해한 곡의 악보도 그 자리에서 거침없이 연주했다. 찬탄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연주가 끝난 후 그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완전한 음악교육을 시킬만한 재정적 여유가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귀족들은 즉시 기부금을 모았고, 더 나아가 그를 6년 동안 재정적으로 충분히 후원하기로 했다.
이에 힘입어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일자리를 아예 포기하고 어린 아들의 장래를 위해 그해 말에 고향을 떠나 제국의 수도 빈(Wien)으로 이주했다. 당시 빈에는 프레스부르크 태생의 후멜(J.N. Hummel 1778-1837)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모차르트의 가르침을 받은 후 유럽 여러 곳에서 활동하던 피아노의 거장이자 뛰어난 작곡가였다. 아버지 아담 리스트는 아들이 후멜의 가르침을 받도록 하고 싶었다. 하지만 비싼 레슨비 때문에 포기하고,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체르니를 찾아갔다.
리스트를 처음 가르쳐본 체르니는 후멜과는 달리 레슨비를 아예 받지 않았고, 그에게 “너는 우리시대에 어느 누구보다도 더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되겠구나”라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체르니의 말은 빈 말이 아니었다. 리스트는 나중에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로서 19세기 유럽 음악세계의 황제나 다름없는 인물이 되었으니 말이다.
만약 어린 리스트가 브라티슬라바 귀족들의 후원을 받지 못했더라면, 또 아버지의 과감한 결단이 없었더라면, 또 체르니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과연 ‘개선의 길’을 제대로 걸을 수 있었을까?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culturebox@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