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는 스타봅스케 디바들로(Stavovské Divadlo)라고 하는 18세기 후반의 유서 깊은 극장이 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도 나오는 이 극장은 유럽에서 원래의 형태를 거의 그대로 보전하고 있는 몇 개 안 되는 공연장으로 외관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다소 담백하지만, 내부는 섬세하고 우아하다. 이 극장은 원래 보헤미아 귀족이 세운 것이었지만 공공의 예술 공간으로 전환되면서 극장명이 ‘스타봅스케 디바들로’로 굳어졌다. 그런데 이 극장명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 딱 부러지는 표현이 없다. 굳이 직역해본다면 ‘스타프(stav)의 극장’이라고나 할까.
중세 사회의 유럽에서 중세와 근세에는 왕정하의 사회계급은 일반적으로 성직자, 귀족, 평민과 같이 3계층 (또는 3신분)으로 나뉘어졌는데, 여기서 말하는 ‘계층’ 또는 ‘신분’을 체코어로 스타프(stav)라고 하며 이에 해당하는 영어는 이스테이트(estate)이다. 그래서 이 극장명을 영어로 Estates Theatre라고 표기한다. 국내 출판물에서는 이 극장을 ‘에스타테스 극장’ 이라고 엉뚱하게 번역되어 있는데 우리말로 딱 부러지는 명칭도 없고 또 엉뚱하게 부를 바에야 아예 ‘돈 조반니 극장’으로 부르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왜냐하면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가 바로 이곳에서 초연되었기 때문이다.
프라하는 모차르트와 아주 각별한 인연이 있는 도시다. 사실 모차르트는 빈(Wien)보다 프라하에서 더 각광받았다. 모차르트와 프라하와의 관계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으로 시작된다. 그는 1786년 5월에 빈(Wien)에서 이 오페라를 초연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이 오페라는 그해 12월에 이 극장에서도 공연되었는데 결과는 유례없는 대성공이었다. 이에 신이 난 흥행주는 모차르트를 프라하로 초청했다. 이리하여 모차르트는 다음해인 1787년 1월 17일 <피가로의 결혼> 공연에 참석하여 청중들로부터 뜨거운 환호를 받았으며, 흥행주로부터 다음 시즌 오페라를 작곡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선금까지 두둑하게 받았다.
기쁜 마음으로 빈으로 돌아간 그는 이탈리아 출신 대본작가 다 폰테(L. Da Ponte)와 함께 스페인의 호색한 돈 후안(Don Juan)의 이야기를 다룬 오페라를 만들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돈 조반니>다. 스페인 이름 후안(Juan)에 해당하는 이탈리아 이름이 조반니(Giovanni)이다.
모차르트는 그해 4월 초에 대본의 첫 부분을 넘겨받고 작곡에 착수했으며 그해 여름에 작곡을 거의 모두 마치고는 10월 4일에 프라하에 다시 왔다. 이 오페라는 10월 29일에 무대에 올려졌는데 서곡은 하룻밤 사이에 썼다고 전해진다. 어쨌든 시간도 촉박하고 연습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가수들의 열연 덕분에 초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돈 조반니>는 단순한 희극도, 완전한 비극도 아니다. 도덕의 붕괴, 인간 욕망의 극단, 그리고 그 대가로서의 형벌까지를 그려낸 이 작품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구성이었다. 하지만 프라하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4년 후, 모차르트는 1791년 9월 6일에 있을 레오폴트 2세의 보헤미아 왕 대관식을 위해 새로운 오페라 작곡을 위임받았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새 오페라가 <티토의 자비>(La Clemenza di Tito)이다. ‘티토’(Tito)는 라틴어 명칭 ‘티투스’(Titus)의 이탈리아어 표기이다. 로마제국 황제 티투스는 콜로세움을 착공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장남으로 기원후 79년에 제위에 올라 선정을 베풀었으나 불과 1년 반 만에 42세의 나이로 절명했다.
이 오페라도 이 극장에서 초연되었지만 <돈 조반니>와 달리 별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이 작품이 생의 마지막 오페라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빈으로 돌아갔다. 이 오페라를 초연한 지 불과 3달 후인 12월 5일, 35세의 나이에 마지막 숨을 거두고 말았으니 말이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culturebox@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