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아나 지역에서 본 강 건너편 세비야 시가지. 투우사 조각상 사이로 대성당의 종탑이 보인다.
트리아나 지역에서 본 강 건너편 세비야 시가지. 투우사 조각상 사이로 대성당의 종탑이 보인다.

 

[아츠앤컬쳐] 과달키비르(Guadalquivir)는 안달루시아 지방 북쪽 산맥에서 발원하여 깊은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흐르다가 코르도바와 세비야를 거쳐 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간다. 세비야 시가지는 과달키비르를 중심으로 동서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뉜다. 동쪽은 대성당이 있는 세비야의 중심이고 서쪽은 토속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트리아나(Triana) 지역이다. 트리아나 지역은 전통적으로 선원들, 도자기공, 건설 노동자, 수공예, 투우사, 집시와 무용수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다.

역사를 뒤돌아보면 이베리아반도는 까마득한 옛날 로마제국의 속주 히스파니아(Hispania)였다. 5세기에 접어들면서 로마제국이 쇠퇴하자 고트족이 히스파니아를 침입하여 왕국을 세웠고, 711년에는 북부 아프리카의 무어인들이 침공하여 고트왕국을 무너뜨리고는 이베리아반도 북부를 제외한 모든 영토에 이슬람 왕조를 건설했다. 이베리아반도 북쪽으로 쫓겨난 기독교 세력은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기나긴 ‘국토회복’ 전쟁에 돌입했다. 카스티야 왕국이 주축이 된 기독교 세력이 남진함에 따라 이슬람 세력권은 점점 약화되기 시작했다. 기독교 세력은 1236년에는 코르도바를, 마침내 1248년에는 세비야를 탈환하게 된다.

강변에 세워진 황금의 탑
강변에 세워진 황금의 탑

과달키비르 동쪽 강변 산책로에 세워진 황금의 탑(Torre del Oro)은 당시를 증언하는 건축물이다. 이 탑은 ‘황금’이라는 이름 때문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져온 금과 은을 보관하던 곳이라는 설이 있으나 사실과는 다르다. 이슬람 세력은 712년에서 1248년까지 세비야 항구의 방어를 강화했는데, 이 탑은 과달키비르를 드나드는 배들을 감시하기 위해 1220년에서 1221년 사이에 세운 군사용 감시탑이었다. 이들은 기독교 함대가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탑과 트리아나 지역에 세운 탑을 쇠사슬로 연결했다. 하지만 1248년 카스티야 함대가 이를 뚫는 데 성공하여 세비야를 트리아나 지역으로부터 완전히 고립시켰다. 외부로부터 보급망이 차단되자 이슬람 세력은 곧 항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세비야를 탈환한 기독교 세력은 조선소를 확장했고, 이곳 항구로부터 곡물, 기름, 와인, 양모, 가죽, 치즈, 꿀, 견과, 금속, 비단 등을 전 유럽으로 수출하면서 세비야를 부유한 도시로 발전시켰다.

기독교 세력은 마침내 1492년에 이슬람의 마지막 보루 그라나다를 함락함으로써 스페인을 통일했다. 그해 10월 신세계가 발견된 다음 세비야는 몇 세기 동안 스페인제국의 해상무역의 중심이 되었는데, 1519년에 바로 이곳에서 마젤란의 첫 번째 세계일주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또한 16~17세기에 스페인 함대는 신세계에서 약탈한 금은보화를 가득 싣고 일 년에 두 번씩 세비야에 입항했다. 당시 세비야는 스페인 본국과 식민지 사이의 독점적인 교역권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고, 아울러 엄청난 부를 만천하에 과시할 수 있는 웅장하고 아름답고 화려한 대성당을 세웠다. 그곳은 원래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였다.

세비야 대학건물. 원래 왕립담배공장이었다.
세비야 대학건물. 원래 왕립담배공장이었다.

황금의 탑에서 동쪽으로 약 200미터 가면 18세기에 세운 왕립 담배공장 건물과 마주치게 된다. 이 건물은 당시 단일 산업용 건축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스페인 식민지 쿠바에서 생산된 입담배는 모두 이곳으로 운송되어 가공되었는데 만 명 이상의 여직공들이 이곳에서 일했다. 프랑스 작가 메리메(1803~1870)는 이곳에서 일하는 집시 여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카르멘>을 썼고, 프랑스 작곡가 비제(1838~1875)는 이를 오페라화 했다. 만약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현대로 바꾼다면 주인공 카르멘은 여공이 아니라 여대생이 되지 않을까?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건물은 1954년 이래로 세비야 대학 건물로 사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오늘날 세비야 시가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과달키비르강은 본류가 아니라, 인공적으로 정비된 지류에 가깝다. 한때는 대형 선박이 드나들던 수로였지만, 지금은 항해 기능을 거의 잃은 채 고요한 도시의 풍경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 대신 강변은 산책로와 공원, 문화공간으로 아름답게 탈바꿈해, 세비야 시민과 여행객의 쉼터가 되었으며, 다양한 축제와 행사로 생기를 더하는 무대가 되고 있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culturebo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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