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작곡가 브람스가 20살 때의 일이다. 헝가리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에두아르드 레메니란 인물이 브람스의 고향 함부르크에서 독주회를 가졌다. 이 독주회는 젊은 나이의 브람스를 매우 감동시켰다.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는 헝가리 태생으로 빈 음악원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학생이었지만 조국으로는 돌아가지 못하고 독일의 도시들에서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레메니의 함부르크 독주회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공연을 본 브람스는 레메니의 연주력과 예술가적 자질에 크게 감동하였다. 두 사람의 젊은 연주자들은 서로의 역량을 알아보고 미래를 향한 프로젝트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피아노의 명수 요하네스 브람스는 레메니의 반주자로서 부족함 없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레메니 역시 브람스에게 큰 관심을 보여 자기와 함께 순회공연을 하지고 제안한다. 브람스는 흔쾌히 이 제안을 받아들여 레메니와 함께 함부르크를 떠나 여행길에 올랐다.
이때의 연주여행은 브람스가 고향을 떠나 프로 음악가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스무 살의 무명 음악가가 고향으로 다시금 돌아왔을 때는 직업 음악가로서의 생활을 폭넓게 경험한 인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연주 여행 도중에 바이올리니스트 요하임을 만난 것도 커다란 수확이었다. 요하임은 레메니의 빈 음악원 동급생이었다.
브람스의 입장에서 레메니와 함께 순회공연을 한 것은 입신에 도움이 되는 여정이었다. 두 사람은 바이마르, 함부르크, 하노버, 뒤셀도르프 등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 연주했으며 브람스 역시 레메니와 함께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이 순회공연의 예술적 차원은 ‘헝가리 무곡집’이라는 피아노 연탄곡집으로 결실을 맺게 된다.
이 순회공연에서 브람스는 레메니를 통해 헝가리의 무곡풍 음악과 집시음악을 접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브람스는 헝가리의 무곡과 집시음악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스케치를 계속해 나갔다. 이것이 결국 브람스의 걸작 ‘헝가리 무곡집’으로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 음악을 오케스트라가 많이 연주하지만 ‘헝가리 무곡’은 원래 두 사람이 피아노를 함께 치는 피아노 연탄곡으로 작곡된 음악이다. 제1집에는 1~5곡이, 제2집에는 6~10곡이 수록되어 1869년에 출판되었으며, 제3집에는 11~16곡이, 제4집에는 17~21곡이 수록되어 1880년에 출판되었다. 후에 브람스가 관현악용으로 편곡한 곡들이 브람스 자신의 지휘로 직접 연주되기도 하였는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펼쳐진 연금 기금 음악회 등이 많은 관심을 받았다.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는 브람스에게 집시음악이나 집시 스타일이 도입된 연주를 많이 들려주었다고 한다. 브람스는 그것들을 기억하고 메모하였다가 후에 자신의 곡들에 반영하였다. 그러한 스타일을 투영한 것이다. 만일 브람스가 레메니와 연주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브람스는 자신의 걸작 ‘헝가리 무곡집’을 만들지 못했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헝가리 무곡집’이 출판되자 이 피아노 작품집은 예상보다 큰 반응을 얻었다. 이 음악을 출판한 짐로크사는 이때의 반응에 고무되어 체코의 작곡가 드보르자크에게 ‘슬라브 무곡집’ 작곡을 의뢰하기도 했다.
헝가리 무곡의 탄생 비화에서 우리는 작곡가 브람스의 꼼꼼한 완벽주의자적 기질을 본다. 하나의 소재를 완벽주의 차원에서 수용하는 성향은 브람스의 특징이다. 헝가리의 집시음악을 완성도 높게 다듬어서 뛰어난 작품집으로 탄생시킨 작곡가의 개성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브람스의 손에서는 교향곡의 예술이 빛을 발했지만 헝가리의 집시음악들도 최고의 예술로 탄생할 수 있었다. 브람스의 예술성이 집시음악에까지 다가간 것이다.
글 | 이석렬
2017 예술의전당 예술대상 심사위원, 2017 이데일리 문화대상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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