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벨룽의 반지’ 공연 포스터
‘니벨룽의 반지’ 공연 포스터

[아츠앤컬쳐] 바그너의 4부작 대작 오페라 시리즈 ‘니벨룽의 반지‘가 한국에서는 최초로 자체 제작된다. 월드아트오페라(대표 에스더 리)는 링 시리즈 제1부 ‘라인의 황금’을 11월 14일부터 18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국내 공연계로서는 역사적 사건이다. 모차르트에서 시작해 베르디와 푸치니까지에만 주로 머물러왔던 우리에게는 너무나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가 1948년 국내 최초로 무대에 오른 지 70년이 지나 2018년이 되어서야 바그너의 반지 시리즈가 국내 최초라는 기록과 함께 제작된다는 점은 상당히 늦은 감이 있다.

우리는 더 빨리 바그너 반지 시리즈를 우리 힘으로 올렸어야 했다. 국립오페라단은 1962년 창단되어 이미 56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런 국립도 못 해낸 일을 재정상태가 만만치 않은 민간 오페라단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런 의미에서 월드아트오페라 에스더 리 대표는 한국 예술계에 엄청난 일을 해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내 오페라계를 고려해볼 때 안타까운 면이 너무나 많다. 유력 정치인들은 앞다투어 국내에 세계적 오페라 하우스 건설을 공약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시는 여러 차례 서울시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추진해 왔다. 대구시도 화려한 오페라하우스를 가지고 있다. 부산시는 해변에 외국 건축가 설계로 멋진 오페라하우스를 건축 중이다. 송도에 대규모 콘서트홀을 완성한 인천시도 지금은 주춤한 상태지만 콘서트홀 바로 옆에 추가적 오페라하우스를 추진했었다.

결국 우리나라 정치가들은 모두 오페라하우스만을 세우기 바쁜 것이다. 정치인들의 꿈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와 같은 멋진 건물을 만들어 자신의 재임기간 중 치적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인의 업적을 보여줄 하드웨어로의 오페라하우스가 아니다. 국내에 오페라를 공연할 하드웨어는 전국 곳곳에 차고도 넘친다. 오페라는 건물로서의 하드웨어적 의미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적 의미, 즉 공연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오페라 없는 오페라하우스는 쉽게 말해 앙꼬 없는 찐빵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제작 ‘니벨룽의 반지’를 이제야 국내 초연하는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도 유사한 상황이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국립기관 예술의전당에 상주하고 있는 국립오페라단으로서는 여러 가지 변명이 가능하다. 먼저 예산상의 제약, 상근 단원의 부재 등등. ‘니벨룽의 반지’ 국내 제작 초연을 민간 오페라단에게 뺏긴 국립오페라단, 예술의전당, 예술 당국 등은 이번을 계기로 예술의전당과 국립오페단, 국립발레단, 국립합창단 등 예술의전당 상주단체들에 대한 근본적 교통정리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니벨룽의 반지’ 4부작 공연은 ‘라인의 황금’이 2018년 11월, ‘발퀴레’가 2019년 5월, ‘지그프리트’가 2019년 12월, ‘신들의 황혼’이 2020년 5월에 각각 공연될 예정이다. 제작비는 편당 30억 원으로 총 120억 원이다. 그간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민간오페라단인 월드아트오페라단이 이처럼 국립오페라단이나 예술의전당도 감당하지 못했던 국내 최대의 오페라 프로젝트를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이는 독일의 세계적 자동차 그룹 BMW가 스폰서로 나섰기 때문에 가능했다. BMW 자동차는 올해 여름 이후 우리나라 고객들에게 불만과 불신의 소리가 높다. 잘 알려진 대로 도로 주행 중 차량 화재가 빈발하고 있으며 대규모 집단 소송도 진행 중이다. 우연히 바그너 오페라 공연과 BMW의 대규모 후원이 겹치기는 했지만 BMW의 오페라 후원은 시기적으로 지난해부터 확정되었기 때문에 차량 화재 사건과는 관련성이 적어 보인다. 이 사태 이전에 민간 오페라단이 추진해온 것으로 제작사는 올해 3월 이미 제작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글 | 강일모
前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경영학박사/ 음악학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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