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탕 [출처: 차이나 탕 홈페이지]
차이나 탕 [출처: 차이나 탕 홈페이지]

[아츠앤컬쳐] 홍콩 문화예술에서 저명한 사람이라면 누구를 뽑을 수 있을까? 여러 사람이 있겠지만 누가 답하든 데이비드 탕 (Sir. David Tang)은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따르는 수식어는 많다. 명품 패션 브랜드인 상하이 탕(Shanghai Tang)의 설립자, 자선사업가, 파이낸셜타임스(Finantial Times) 컬럼니스트, 시대를 풍미한 국제 사교계의 거물이자 홍콩의 민간 외교대사. 홍콩에서 태어나 13세에 영국으로 건너가 교육받았던 그는 성공한 기업인이자 훌륭한 자선사업가였다.

탕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읽어내는 관찰력을 가졌고 빠르게 트렌드를 읽었다. 1994년 중국의 경제가 고도성장하고 있음에도 서양에 제대로 알려진 중국의 명품 브랜드가 없다는 것에 착안, 서양의 명품 브랜드들과 대등할 만한 고급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상하이 탕(Shanghai Tang)을 시작했다. 그리고 10여 년 만에 상하이 탕을 루이뷔통, 구찌와 대등할 만큼의 브랜드로 성장시켰고, 2006년에는 명품 브랜드 카르티에와 몽블랑 등을 소유한 스위스 리치먼드 그룹에 상하이 탕을 매각하기에 이른다.

그는 단순히 패션에 국한하지 않고 2007년 런던 도체스터 호텔(Dorchester Hotel)에 상하이 탕(Shanghai Tang)을 열어 수준 높은 광둥 레스토랑으로 성공시켰다. 중국의 고급문화를 선도하는 브랜드를 만든 계기는 서양에 수준 높은 중국 문화를 알리겠다는 취지도 있었지만 중국 내 고급문화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미리 계산한 그의 혜안도 있었다. 빠른 성장 중인 중국에서 비즈니스나 유학을 통해 서양문화를 배우고 돌아온 자본가들과 어린 학생들의 수준이 높아져 중국 내 고급 문화 수요가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데이비드 탕 [출처: 상하이 탕 홈페이지]
데이비드 탕 [출처: 상하이 탕 홈페이지]

그는 성공의 비결을 묻는 젊은이들에게 비결은 없고 ‘강한 신념과 자신감’만 있으면 된다고 답했다. 탕의 비즈니스 철학은 곧 그의 삶의 신조였다. 그는 홍콩의 영국 식민지 역사 속 가장 변화와 혼돈이 많던 시기(1952~2017)에 영국에서 교육받았지만 ‘홍콩인’이라는 자긍심이 컸고 정의에 대한 열정과 신념 또한 확고했다. 그래서 홍콩의 정치와 민주화에 거침없는 소신을 밝혔다. 또한 부자 도시인 홍콩에서 무려 15%(약 백만 명)가 빈민층이라는 아이러니를 공개적으로 소리높여 비판하기도 했다. 홍콩의저명인사들이 중국 정부에 반하는 발언을 쉽사리 하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그의 이런 행보는 이례적이다. 기득권층에 속해 있으면서도 잘못된 기득권 문화를 인정하고 비판할 줄 알았다.

무엇보다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 때문일 것이다. 폭넓은 예술적 소양으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중국어로 번역해 출판하기도 했고, 홍콩과 영국 문화 예술계의 주요 후원자이기도 했다. 그가 만든 사교클럽인 차이나 클럽(China Club: 회원제 클럽)에는 젊은 중국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가득 차 있는데 무명이었던 예술가들이차이나 클럽을 통해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밝힌 예술가가 많았을 만큼 중국계 예술가들을 위한 그의 노력과 안목은 남달랐다.

내로라 하는 미술 애호가로서 영국 왕립 미술 아카데미 이사, 영국 테이튼 미술관 아시아 퍼시픽 회장을 거쳤고 클래식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자문, 런던 바흐 소사이어티의 회장 등을 이어갔다. 문화 예술에 기여한 그의 노력으로 1995년에는 프랑스 문화훈장을, 2008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 훈장도 받았다. 탕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홍콩 정부에 예술에 더 투자하고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 가며 홍콩의 문화계 저명인사로 늘 목소리를 높였다.

상하이 탕 [출처: 상하이 탕 홈페이지]
상하이 탕 [출처: 상하이 탕 홈페이지]

그가 이런 일례의 여러 일을 해낼 수 있었던 본인의 가장 큰 자산은 훌륭한 매너와 유머였다. 탕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났고 배우 러셀 크로우(Russell Crowe), 모델 나오미 캠벨(Naomi Campbell) 같은 스타들과도 가까웠으며, 친구였던 피델 카스트로 (Fidel Catro, 쿠바 총리)를 통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 쿠바 시가 독점 판매권을 가진 퍼시픽 시가 컴퍼니(Pacific Cigar Company)도 세웠다. 그의 사교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89년 천안문 사건 이후 존 메이저 영국 총리와 리펑(李鵬) 중국 총리의 만남도 주선하게 했다. 민간 외교관으로 그는 홍콩과 중국의 훌륭한 인재였다.

2017년 안타깝게도 암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간암 판정을 받은 뒤에도 홍콩 암 펀드를 만들어 질병 퇴치를 위해 노력했고, 유럽 암 연구치료 기구(EORTC)의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파티광이자 자선사업가였고, 비즈니스맨이자 저명한 홍콩의 문화 예술후원자였던 탕의 화려한 업적은 짧은 글로 설명하기 부족하다.

홍콩에 온다면 탕의 패션 브랜드 ‘상하이 탕’을 하버시티(Harbour City), 퍼시픽플레이스(Pacific Place) 등 큰 쇼핑몰에서 만날 수 있고 기회가 된다면 차이나 탕이나 차이나 클럽의 레스토랑도 찾아보자. 중국은행(Bank of China building) 건물에 위치한 차이나 클럽(멤버십 있는 사람의 초청이 필요)에서는 탕의 미술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홍콩 랜드마크(Landmark Atrium)에 위치한 ‘차이나 탕’은 중국의 전통과 팝아트가 결합된 ‘마오쉬크(Mao-chic)’를 컨셉으로 탕이 직접 디자인한 레스토랑 인테리어와 더불어 세팅까지 예술적인 훌륭한 광둥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글 | 박희정
아츠앤컬쳐 홍콩특파원, 서강대 영문학과, 2006 미스코리아 美,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맨파워코리아 전시컨벤션 큐레이팅, 중앙일보플러스 교육사업본부 예술교육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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