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The Hong Kong Jockey Club
사진출처 : The Hong Kong Jockey Club

[아츠앤컬쳐] 포털 사이트에서 홍콩 여행이라는 단어로 검색을 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정보는 레스토랑 혹은 쇼핑 이야기다. 홍콩에 가면 꼭 먹어보고 사가야 한다는 제니쿠키나 에그타르트에 관한 글에서처럼 더운 날 긴 줄을 서면서 굳이 홍콩 사람들의 먹거리 문화를 체험해보고 싶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귀하게 낸 시간에 홍콩을 여행 중이라면 현지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과 문화를 찾아보기를 필자는 강조하고 싶다. 홍콩에서 몇 년을 살면서 친지들이나 지인들을 가이드할 기회가 많다. 그때마다 딤섬을 먹는 일보다 꼭 추천해서 같이 경마장을 찾아본다.

홍콩 이주 초반, 현지 문화 중 신기한 것이 경마였다. 경마장 외에도 경마권(배팅 티켓)을 살 수 있는 공식 장외발매소와 스크린경마장이 시내 여기저기서 영업 중인 점도 흥미로웠고 매주 경마의 수익금 중 90%가 스크린경마장에서 나올 만큼 그 규모가 매우 크다는 점은 더 놀라웠다. 경마에 대한 홍콩 사람들의 관심은 대단하다. 경마가 열리는 매주 수요일은 Happy Valley로 모이는 인파 때문에 버스와 택시 같은 대중교통까지 Happy Valley로의 길을 선회해서 운행할 정도로 큰 행사이다. “Happy Wednesday”란 인사말도 그래서 홍콩에서는 예사 인사가 아니다.

사진출처 : The Hong Kong Jockey Club
사진출처 : The Hong Kong Jockey Club

우리와 달리 홍콩에서 경마와 경마장이란 것은 하나의 엔터테인먼트이자 문화의 장이다. 어릴 때부터 도박을 접하고 경마가 열리는 날은 가족과 다 함께 식사하며 텔레비전으로 즐기기도 하고 같이 배팅도 하며, 친구나 동료들끼리 수요일은 Happy Valley에서 약속을 정하는 것도 흔하다. 클럽문화가 활성화되어 있는 홍콩에서 사회 각계각층의 고위인사들, 기업 CEO들이 가장 멤버가 되고 싶어 하는 곳이 바로 경마를 총괄 운영하는 경마단체인 홍콩자키클럽(Hong Kong Jockey Club, 이후 HKJC으로 표기)이다.

HKJC의 멤버가 되기는 쉽지 않다. 돈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네트워크가 좋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평가 기준도 까다롭고 대기자도 많다. HKJC에서 회원이 되는 것도 힘든데 게다가 마주가 된다면 그것은 홍콩 사회의 지도층으로 인정받고 부와 명예를 다 가진 것과 다름없다. 그만큼 경마와 HKJC에 대한 이들의 사랑은 대단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어릴 때부터 도박을 즐기는 이들이 도박중독이 될 가능성은 1.4%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3.2%, 영국의 2.5% 등 청교도 문화가 있는 나라와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무엇보다 경마를 대하는 자세, 문화의 차이다. ‘도박’이란 말은 유희성을 띤 하나의 놀이라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도박이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게 된 것은 한국의 경마 역사와 관련 있다는 것을 홍콩에 와서 알게 되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도박을 접하며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닌 놀이로서 이해한다. 여기에 홍콩은 경마하는 날을 하나의 축제이자 유희로 잘 성숙시켰다.

사진출처 : The Hong Kong Jockey Club
사진출처 : The Hong Kong Jockey Club

대부분의 나라처럼 홍콩도 한때 불법도박으로 골치를 앓았던 때가 있다. 그때 홍콩정부가 선택한 방법은 경마와 더불어 스포츠 로또 등 도박에 관한 권리를 단독으로 HKJC에게 이양해 주는 것이었다. 불법 도박의 수사 단속권을 준 것이 아니라 불법도박의 재미를 합법도박에서도 가능하도록 하여 도박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 기회를 제공했다. 그래서 불법도박에서만 가능했던 높은 환수율, 배팅 금액 무제한 등을 합법적으로 허용하면서 그 도박에 관한 모든 권한을 HKJC에 넘겨 불법도박을 잡았다. 이를 통해 불법도박으로 움직이던 검은 돈까지 합법적으로 HKJC를 통해 오픈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HKJC은 도박중독에 대한 지속적인 캠페인과 교육에도 힘쓰고 있으며 도박 중독 증상이 있는 고객을 대처하는 방법에 관한 매뉴얼을 잘 갖추고 끊임없이 직원교육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HKJC의 비전이라 할 것이다. 홍콩은 소비로 내는 영업세나 부가가치세 같은 간접세가 없고 소득세로 개인소득세, 사업소득세를 내는데 이도 16% 정도에 불가하다. 그럼에도 홍콩 정부의 재정에 문제가 없는 것은 다른 세수처가 있다는 것이다.

홍콩에서 최대 세금납부자는 바로 홍콩자키클럽(HKJC)이다. 인구가 약 740만 명(비교: 남한 인구는 약 5,160만)에 불과한 홍콩에서 경마권 판매액은 2016-2017 1년간 1,160억 홍콩달러(한화 약 17조)가 넘는다. 이는 2016년 한해 한국 마사회가 판매한 경마권 8조 원과 비교해서 인구 대비 대단한 판매액이다. HKJC은 같은 기간 약 305억 홍콩달러(한화 약 4,4조)를 세금으로 냈다. 또한 HKJC은 클럽 운영의 최소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비용인 1,000억 원 이상을 매년 자선사업에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비영리단체로는 세계 6번째의 큰 규모이다.

사진출처 : The Hong Kong Jockey Club
사진출처 : The Hong Kong Jockey Club

HKJC는 경마 외에 스포츠 엔터테인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홍콩을 위한 최고의 자선단체로서 기부와 사회복지를 추구한다. 그 자선사업의 영역은 문화, 예술, 교육 등 다양하다. 그래서 미술관, 대학교, 공원, 골프 코스 등 그들의 지원과 후원을 받은 다양한 곳에서 HKJC 마크를 볼 수 있다. 두 달 전 옛 경찰청 본부 자리를 리모델링해서 새로운 복합 문화예술의 장소로 문을 연 Tai Kwun Centre for Heritage and Art도 HKJC의 연구와 투자를 거쳐 탄생한 곳이다.

이렇듯 HKJC는 홍콩 최고 복지 단체로서 지역 사회의 발전과 건강한 문화 개발을 위해 도시 활성화 사업, 문화예술지원 등에효과적으로 기부하고 있다. 이런 그들의 사회 기여와 노력으로 홍콩의 경마 및 도박 문화는 안정적으로 성숙할 수 있었다. 그래서 홍콩 관광청이 제안하는 홍콩 내 여행 코스 중 하나에 경마라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홍콩 여행을 한다면 경마장을 찾아보면 어떨까? 배팅할 때 흥미로 적은 금액을 해본다면 이는 한국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 경마는 매주 수요일에 홍콩섬(Hong Kong Island) Happy Valley에서, 매주 토요일에 신계(新界, New Territories) Shatin에서 주 2회 열린다. 매년 9월부터 시작해서 그 후년 6월까지가 경마 시즌이고, 말들의 체력과 건강을 위해 혹서기인 7월부터 8월까지는 경기가 없다.

HKJC의 회원권을 가진 자의 초대를 받으면 박스(Members boxes)에서 코스 식사와 함께 경기를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경마장 내 뷔페나 바를 예약해서 저녁이나 음료를 하면서 에어컨 아래 실내에서 경기를 볼 수도 있다. 아니면 캐주얼하게 홍콩 교통카드인 옥토퍼스카드로 홍콩 10불을 내고 퍼블릭 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퍼블릭 지역은 레이싱이 끝나고 다음 레이싱이 시작되는 30분 사이 밴드 공연도 이어지니 맥주 한잔을 들고 음악공연과 경마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경마를 즐기는 각기 다른 모든 공간들이 나름의 흥미 거리가 있다. 우리와 또 다른 경마 문화를 가까운 홍콩에서 즐겨 보자. 퍼블릭 관람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들은 드레스 코드가 있으니 확인도 필수다. 공식 홈페이지 www.hkjc.com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tourist corner에서 더 자세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글 | 박희정
아츠앤컬쳐 홍콩특파원
서강대 영문학과, 2006 미스코리아 美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맨파워코리아 전시컨벤션 큐레이팅
중앙일보플러스 교육사업본부 예술교육담당

저작권자 © Arts & Cultur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