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i Kwun Centre for Heritage and Arts
Tai Kwun Centre for Heritage and Arts

[아츠앤컬쳐] 최근에는 여러 나라의 주요 도시 명소를 찍고 오는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테마를 가진 코스가 뜨고 있다. 모네의 그림을 따라가는 여행이나 셜록 홈스의 스토리 여행 혹은 미술관 여행 등. 다양한 테마들을 주제로 유럽이나 서구 나라들을 찾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고유한 역사가 그대로 숨쉬고 있는 유적지와 도시 속의 오래된 건물들이 아직도 잘 보존되어 있어 끝없는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서이다. 역사와 전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켜내기는 쉽지 않다. 특히 새것을 선호하고 ‘신상’이라는 유행어가 돌만큼 신제품과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의 문화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난 5월 25일 홍콩 소호에 개관한 Tai Kwun Centre for Heritage and Arts를 다녀오면서 문화유산 보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Tai Kwun Centre for Heritage and Arts는 홍콩의 옛날 경찰청 본부 건물이 유산복구사업을 통해 다시 태어난 곳이다. 17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Tai Kwun 지역은 중앙 경찰청, 교도소, 중앙법원 등 역사적인 건물이 있던 자리로 오랜 건물들과 야외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세계적 수준의문화유산이자 홍콩 예술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기존 역사적 건물을 보존하면서 현대적인 예술 공간인 JC Contemporary와 JC Cube 두 건물이 신축되어 문화예술 전시, 상영 및 워크쇼까지 이뤄지게 된다.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홍콩에서, 그것도 시내 한복판의 땅과 건물을 상업적인 용도로 재개발하는 것이 아닌 문화유산으로 복구하여 예술공간으로 변화시킨 결단이 놀랍다.

이 중심에는 홍콩정부와 Hong Kong Jockey Club(HKJC)이 있다. 이들은 10여 년을 연구하고 고민하여 지금의 Tai Kwun Centre for Heritage and Arts를 만들어냈다. 홍콩은 경제적 논리와 편리로만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공간이 가진 영향력과 의미를 깊이 관철하여 그들이 가진 문화 유산 공간들을 훌륭하게 복원하고 유지하여 도시 속의 오랜 홍콩을 지켜내고 있다. 20세기 초반의 홍콩 역사까지 궁금하게 하는 Tai Kwun Centre 교도소 안 그림자 작업들과 홍콩 아티스트들의 작품 전시를 하고 있는 JC Contemporary까지 오래된 건물 속의 이 모든 것은 Heritage and Arts라는 이름으로 잘 어우러져 있다.

어린 시절 읽었던 책 ‘먼나라 이웃나라’에는 동북아 3국을 비교하며 한국에 대한 설명이 이렇게 나와 있었다. ‘외침이 많은 반도국인 한국은 이민족과 접하게 되면 순수한 혈통이 끊기고 민족 정체성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믿음 때문에 외부에 대해 배타적이다. 그래서 한민족의 기저에는 정통성을 매우 중요시하는 것이 있다.’ 근본에 대한 기질은 우리가 흔히 생활 속에서 만나는 정통 할머니 족발, 원조 곰탕 등이나 남 이야기를 하며 상대를 업신여길 때 족보 없는 가문이라고 하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유독 건축물에 관해서는 그 전통이나 건물을 지키려고 하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쉽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모교의 오래된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느냐 마느냐 하는 논쟁이 뜨거웠다. 건물을 지키고자 한쪽에서는 용재관(당시 건물의 이름)이 학교의 역사를 함께 해왔다는 이유 외에도 문화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건물이라 했다. 용재관은 동문이자 영문학자 출신 소설가 최인호씨의 소설 ‘바보들의 행진’의 무대이기도 했고 한국 최초 건축가였던 김재철 씨가 설계를 맡은 건물이기도 했다. 2년간의 논란 속에서 결국 철거되었던 용재관은 그 후 새로운 신식 건물로 지어졌다.

DDP 건축 때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동대문 운동장 철거과정에서 한양도성 성곽, 이간수문, 그리고 훈련도감의 분영인 하도감 터 등 다수의 문화재들이 발굴되었으나 서울시는 계획대로 그 위에 DDP를 짓고 하도감터는 자리를 옮겼으며 성곽은 돌담으로 DDP 옆에 남겼을 뿐이다.

Tai Kwun Centre for Heritage and Arts를 방문한 후 용재관과 DDP 밑에 덮인 문화재들을 떠올렸다. IT와 기술 강국이라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타이틀에는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와 트렌드를 앞서가는 신상 문화가 분명 그 에너지를 발휘했을 것이다. 반면에 같은 이유로 우리에게는 오래된 건물을 지켜서 리모델링을 하기보다는 재건축, 재개발을 통해 새로운 아파트나 큰 건물을 짓는 것을 선호한다. 돈을 들여서 남의 문화유산을 보러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정작 우리의 문화유산은 제대로 지켜내고 있는지 아이러니 한 부분이다.

전통과 현대는 함께 공존할 수 있고 역사와 문화재는 우리의 노력에 따라 더 미래지향적인 모습으로 보존 가능하다. 족발과 곰탕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에도 근본과 전통을 따져서 한국이 가진 고유한 자산들과 공간들을 아름답게 지켜낼 수 있는 문화가
함께 성숙했으면 한다.

글 | 박희정
아츠앤컬쳐 홍콩특파원, 서강대 영문학과, 2006 미스코리아 美,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맨파워코리아 전시컨벤션 큐레이팅, 중앙일보플러스 교육사업본부 예술교육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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