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얼마 전에 있었던 남한과 북한의 정상회담 후 기대 이상의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오랫동안 냉각기였던 남북한의 관계를 생각하면 큰 진전이다. 남한과 북한의 관계 발전에 맞춰 각계의 전문가들은 다양한 변화를 기대하고 예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남북한 철도 건설에 대한 논의가 반갑고 흥미롭다. 대륙에 연결된 반도임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연결고리가 끊겨 외딴 섬 같았던 남한이 남북 철도로 연결된다면 새로운 실크로드가 열릴 것이다. 유럽까지도 철도 횡단이 가능해진다는 기대에 SNS상에서는 서울-베를린 티켓이라는 가상 이미지가 한순간에 퍼지기도 했다. 철도 건설이라는 인프라 구축 하나만으로도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치는 매우 크다.
교통의 발달은 유통의 흐름을 발 빠르게 이끌 수 있다. 가시적인 물류 영향력 외에도 사회 문화 전반적인 교류 속도가 빨라지고 그 폭도 넓고 다양해질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했을 때도 그 나라를 지배하면서 제일 먼저 했던 일이 철도 건설이다.
홍콩에서도 비슷한 역사의 과정을 거쳐왔다. 19세기 중국(당시 청)에서 차(tea) 수입이 절실했던 영국은 많은 양의 차를 자국으로 수입하면서도 청나라로 내보낼 수출품이 제대로 없어 무역 불균형으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당시 영국이 내세울 만한 수출품은 산업화 발전에 따라 생산된 공산품들이었다. 하지만 청은 태평천하의 시대를 거치면서 급속히 늘어난 거대인구가 기반이 되어 값싼 노동력으로 수공업이 발달한 터라 영국산 공산품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영국은 그 적자를 극복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이나 인도 등에서 가져온 아편을 청에 유통시켜 청나라 서민들을 마약 중독으로 이끌었고, 지속적으로 아편을 청에 파는 방법으로 무역 불균형을 맞춰갔다.
청나라 서민에게 퍼진 아편 중독이 사회의 큰 문제로 떠오르면서 당시 청은 유일한 무역의 통로였던 광저우까지 외국인 무역을 금지시켰다. 청의 외교정책 때문에 영국의 불만이 커져가고 있던 때에 외국인 무역까지 금지되자 이에 대한 영국의 반발로 결국 아편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2차에 걸친 아편전쟁에서 패한 청은 홍콩과 주룽반도까지 영국에 내놓게 된다. 청은 난징조약 당시 홍콩을 전략적, 경제적 가치가 없는 황무지로만 판단해 홍콩을 영국에 내주는 것은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홍콩과 더불어 주룽반도까지 영국으로 넘어가면서 청은 프랑스와 미국 등 서구에 자연스럽게 문호를 열어 주는 계기를 마련해준 셈이 되었다. 아편 수출만이 목적이 아니었던 영국의 큰 그림은 차츰 그 야욕을 드러내었는데 그 시작이 바로 철도 건설이라고 할 수 있다. 철도를 통하여 중국 대륙 전체로 천천히 뻗어갈 밑바탕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 당시 철도의 홍콩 쪽 시종착역은 구룡( Kowloon 九龍)역이었다. 당시 구룡역의 위치는 지금의 리츠칼튼 호텔 쪽이 아니라 하버시티 쇼핑몰 앞 선착장인 연인의 거리 쪽이었다. 옛 역사 자리에 현재는 홍콩문화센터(Hong Kong Cultural Centre)가 자리하고 있으며 역의 일부였던 시계탑만 남아있다. 홍콩을 찾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 중의 하나인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보기 위해 찾는 홍콩문화센터 앞 광장 전망대 옆 시계탑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대륙을 잇는 그 당시의 시종착역은 지금의 홍함(Hung Hom)역으로 1975년에 옮겨졌다. 홍함역은 광저우 외에도 상하이, 베이징 그리고 내몽고로 가는 열차도 운영하며 철도는 몽골 울란바토르까지도 연결된다. 19세기 영국의 그림이 얼마나 컸는지는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홍콩이 1997년 중국에 반환되고 중국이 국가적 통일성을 마련하고자 한 계획에도 철도는 첫 중요한 사업이었다. 그래서 홍콩 내 정거장 없이 중국 본토로 바로 연결된 직통 고속철도(CRH)가 현재 건설 중이며 올해 9월부터 운행하게 된다. 고속철 시대가 시작되면 홍콩-베이징은 8시간이 걸린다. 고속철의 홍콩 내 종착점은 ICC 건물이 있는 리츠칼튼 쪽, 현재의 구룡역이며 이는 홍콩국제공항으로 연결되는 공항철도(Airport Express) 라인과 교차역이 된다.
홍콩은 중국에 반환되었지만 특수 자치구로 남아 사업, 금융, 경찰, 관세 제도는 최소 50년간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하기로 약속되어 있다. 하지만 점차 더 파고드는 중국의 정치적 개입으로 자치지구로 생존하고자 하는 홍콩 원주민과 하나의 중국을 만들려는 중국 정부 간의 갈등은 여전하다.
고속철도는 대륙 본토인들과 홍콩 사람들 간의 경제적 문화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하고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까지 홍콩에 더 깊이 스며들게 할 것이다. 고속철도의 운행을 앞두고도 홍콩 내의 반발이 여전히 큰 이유이기도 하다. 고속철의 속력만큼 홍콩의 주권도 더 빨리 잠식되어 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홍콩의 이러한 변화와 분위기를 직접 느끼고 있기에 남한과 북한을 잇는 철도 건설이라는 주제가 나왔을 때 무척 흥미로웠다. 본격적인 남북한 교류의 첫걸음을 뗀다는 기대감도 든다. 대륙을 잇는 남북한 철도 건설이라는 큰 그림 속에 주변 강대국들의 경제적인 계산은 이미 초안이 그려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단의 아픈 역사를 되돌리지 않도록 남한과 북한이 주체가 되어 하나씩 완성되어 가는 남북한 철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관심과 협력이 필요한 과제다. 서울에서 홍콩까지 철도 여행이 가능한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
글 | 박희정
아츠앤컬쳐 홍콩특파원, 서강대 영문학과, 2006 미스코리아 美,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맨파워코리아 전시컨벤션 큐레이팅, 중앙일보플러스 교육사업본부 예술교육담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