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도서관에 책이 없다. 그렇다면 도서관이 아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2015년 1,000만 장서를 돌파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자료를 낸 바 있다. 그러나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책이 사라졌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최근 몇 년에 걸쳐 수백억 원이 넘는 국비를 들여 본관 2층, 3층, 4층 열람실 리모델링 공사를 벌였다. 일부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외관상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유리 창호도 수십억 원 이상의 예산으로 우리나라 최고급 창호로 전부 교체했다. 문제는 리모델링 후 2층 문학실, 3층 정부 간행물실, 4층 사회과학 자연과학실을 가득 채웠던 수만 권이 넘는 책들이 거의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다. 초대형 건물의 중앙에 겨우 몇천 권의 책들만이 과거 개가식 열람 방식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리모델링 이전과 이용 방식에 바뀐 점이 있다. 이전에는 수만 권의 책들을 오가며 마음대로 책을 뽑아볼 수 있었다. 이제는 모든 책을 지하 서고로 내려보내고 이용자들은 컴퓨터로 검색해 각층 안내대에서 책을 신청하면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책을 신청한 층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정 주제를 찾아 관련된 책을 비교 열람하고자 할 경우 과거에는 서가를 직접 오가며 책들을 꺼내 볼 수 있었지만 현재는 제한된 숫자의 책들을 신청 후에만 확인 가능하다는 것이다. 도서관 용어로 개가제에서 폐가제로 바뀐 것이다.
이용자들은 누구도 불편한 폐가제를 좋아할 수가 없다. 당장 국립중앙도서관은 리모델링 이전 3층, 4층 열람실의 좌석을 거의 모두 채웠던 이용자들 숫자가 급감해 리모델링 이후 현재는 열람실이 텅텅 비어있다. 누구를 위한 리모델링인가. 국민을 위한 것은 전혀 아니다. 관계자들에겐 미안한 해석일 수 있으나 2층, 3층, 4층의 수만 권의 책들을 개가제에서 폐가제로 바꾸면 도서관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일이 엄청 줄어들 것이다. 개가제에서 이용자들이 하루에도 수천 권에서 수만 권에 이르는 책들을 마구 빼어다가 반납 테이블에 올려놓으면 일일이 한 권 한 권 모두 정확한 장소를 찾아 매일 다시 꽂아놓는 일이 단순 작업이면서도 매우 고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일이 너무 힘들다면 실업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겸, 아르바이트 학생들을 장기적으로 투입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여하튼 지금이라도 리모델링 이전 방식대로 2층, 3층, 4층 열람실에 책들을 다시 수만 권 배치하고 개가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책의 실물을 볼 수 없는 도서관, 그것은 도서관이 아니다.
일본 츠타야서점(屋書店, Tsutaya Books)은 한국 국립중앙도서관과 정반대의 경영 철학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 급팽창하며 일본 최대의 서점 체인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인터넷 휴대폰 SNS의 시대에 책이 잘 팔리지 않고 출판사 서점 운영이 어려운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적 현상이다. 그럼에도 츠타야서점은 책을 비롯해 문화를 파는 상점으로 일본 전역에 지점을 늘려가고 있다.
그렇다면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일본 츠타야는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비결은 단 하나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츠타야는 그것을 묻고 또 물었던 것이다. 츠타야는 크게 성공한 지금 이 순간에도 이용자들에게 서점에 온 이유를 물으며 매장 스타일을 바꿔가고 있다. 우리들은 서점에 왜 갈까. 심심해서, 또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자료를 찾기 위해서, 혹은 여행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도 간다. 츠타야는 계속해서 방문자들의 방문 목적을 분석하고 그 목적들이 서점의 특정 섹션에서 동시에 해결되도록 끊임없이 카테고리화를 고민한다. 영국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어떤 책을 좋아하고 어떤 영국 상품들을 사고 싶어 할까를 고민하고 책, 음반, 관련 상품들을 관련 장소에 배치하는 식이다.
서점 곳곳에 상품 구매에 이르는 복잡하고 부담스러운 의사결정을 위해 안락한 의자와 맛있는 커피를 준비하는 것은 당연하다. 커피는 물론 유료. 일본 츠타야 전략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도입한 곳 중 하나는 신세계 그룹이 운영 중인 COEX 몰이다. 애초 신세계 그룹은 거액을 들여 COEX몰 운영권을 확보하고 리모델링을 했으나 이용자들이 크게 늘지 않았다. 그러자 2017년 5월 중앙 광장에 연간 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5만 권의 장서를 갖춘 개가식 별마당도서관을 열었다. 이후 이용객들이 급증하며 신세계 그룹은 COEX 몰을 활성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지금 현재 국내 대형건물인 국립도서관 2층, 3층, 4층 열람실에 있는 책들은 민간이 운영하는 신세계 별마당도서관에 있는 책 5만권보다 훨씬 적다. 그래도 도서관 앞에 국립중앙이란 이름을 달아도 될까. 국립중앙도서관은 안타깝게도 일본 츠타야서점, 신세계 별마당도서관 경영전략과 정반대의 전략으로 가고 있다. 과연 어떤 경영전략이 옳은 선택일까.
글 | 강일모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사)한국음악협회 이사, 경영학박사/ 음악학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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