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이 이선희의 ‘J에게’를 연주하고 있다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이 이선희의 ‘J에게’를 연주하고 있다

[아츠앤컬쳐]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오스트리아 스키 영웅 마르셀 히르셔가 용평 슬로프의 가파른 눈비탈을 KTX 기관차와 같은 파워로 겁나게 내리꽂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남북 대결에서는 스켈레톤 윤성빈,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 쇼트트랙 최민정, 임효준 등이 활약한 남한이 북한을 압도했다. 하지만 문화 올림픽 대결에서는 남한 측 문화 행사가 북한의 그것에 비해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공연 준비를 위해 파주 통일대교를 내려온 시점부터 수천 명의 경찰들의 보호를 받으며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강릉, 서울 공연장 등을 돌며 현지 점검을 하고 호텔에서 식사를 하는 일거수일투족은 국내 주요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보도를 했다. 이때부터 북한의 문화적 압승은 예고됐다.

2018년 2월 8일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린 ‘삼지연관현악단 특별 공연’ 입장권의 일반인 추첨 비율이 139:1에 달했고 암표는 100만 원이 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 공연 역사에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베를린 필이 공연할 경우 50만 원 내외의 입장권이 매진되기는 했어도 암표가 100만 원이 넘어가는 경우는 없었다. 강릉 공연 바로 다음 날인 11일 펼쳐진 국립극장 북한 예술단 공연에는 남북한 VIP가 총 출동했다.

문재인 대통령, 김정숙 여사,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등을 포함 천5백여 명의 관객이 객석을 채운 가운데 열띤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현송월 단장은 감기로 컨디션이 좋지 않다면서도 남북의 VIP가 총출동하고 국내외 언론의 취재가 뜨거운 것을 의식한 듯 갑작스러운 결정인지 원래 계획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무대에 직접 출연해 노래하기도 했다. 공연은 실시간 시청률 7.8%를 기록했다.

북한 가수들은 삼지연관현악단의 반주로 남한 노래 이선희의 ‘J에게’를 열창하여 예쁜 목소리로 인기를 끌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북한 가수들이 ‘J에게’를 원곡대로만 부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수들과 관현악 반주는 부분적으로 서방세계의 재즈 화성, 현대화성과 멜로디를 차용하고 있었다. 북한 음악의 중대한 변화가 감지되는 부분이다.

북한 음악이 남한에 음악적으로 큰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 이유는 관현악단이 아무리 절도있게 연주한다 해도 화성 진행과 멜로디가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북한 음악도 ‘J에게’의 남한 연주에서 들려준 것보다 훨씬 더 과감하게 현대 화성과 멜로디를 받아들이고 세계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관현악단은 지휘자 이하 백여 명 내외의 모든 단원들이 하나의 마음으로 집단적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한다. 백여 명이 아니라 수만 명이 모인 집단 행사에서도 압도적 일체감을 과시하고 있는 북한이야말로 관현악단 연주에서 세계 최정상급에 도전하기가 남한보다 더욱 쉬울 수도 있다.

한 나라가 하나의 좋은 관현악단을 갖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 하드웨어로의 훌륭한 콘서트홀은 필수다. 소프트웨어로 100명 내외의 최상급 연주력의 단원들, 모든 연주자들을 음악적으로 압도할 수 있는 마에스트로, 그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를 즐기고자 하는 청중들이 필요하다. 여기에 예산 지원 스폰서 기업, 좋은 관현악단을 유지하고자 기꺼이 세금을 내고 지원하고자 하는 국민 여론 등도 필수다. 이렇게 조건을 모두 열거하고 나면 남북한 어느 쪽이 세계적 교향악단을 먼저 만들 수 있을지 판단은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북한도 남한 못지않은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만약 북한이 세계적 지휘자를 초빙할 예산을 감당할 수 있다면 북한에서 세계적 교향악단이 2~3년의 가장 짧은 기간 안에 탄생하는 대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서방세계의 교향악단 지휘자 중 가장 뜨거운 인물로 베네수엘라 출신의 거장 구스타보 두다멜의 등장을 벤치마킹해 볼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과거나 지금이나 부자 나라가 아닌데도 잘 알려진 것처럼 ‘엘 시스테마 (El Sistema)’라는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이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와 두다멜이라는 걸출한 스타를 배출한 것이다. 베네수엘라도 해냈는데 남한도 북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본다. 평창올림픽 기간 북한 측 예술 활동은 국내외의 큰 주목을 받은 반면, 남한 측 활동은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는 전 세계 주요 인사들과 세계 언론들이 집중적으로 크고 작은 뉴스들을 쏟아 내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앞으로 수년 내에 이번 올림픽에 버금가는 대규모 국제행사가 계획된 것이 없다. 한국 음악계에는 BTS, 엑소, 싸이, 서울시향, KBS교향악단, 소프라노 조수미, 바리톤 사무엘 윤, 피아니스트 조성진, 김선욱, 임동민, 임동혁, 선우예권, 지휘자 정명훈, 지휘자이자 첼리스트 장한나 등 막강 음악인들이 포진해 있다. 한국의 문화 예술계가 이번 평창올림픽 폐회식에서 전 세계를 향해 강력한 문화 발신지로의 뉴스를 터트려주기를 기대한다.

글 | 강일모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사)한국음악협회 이사, 경영학박사/ 음악학석사
president@ku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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