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펠러 3세가 생전에 가장 아끼며 맨해튼 저택 거실에 걸어두었던 피카소 그림 아래서신문을 읽고 있다. 1천억 원이 넘는 이 피카소 그림을 포함해 평생 모은 컬렉션이 5월 8일부터 크리스티를 통해 5천억 원 이상에 모두 팔리게 되고, 그의 유언에 따라 하버드대학 등에 전액 기부된다.
록펠러 3세가 생전에 가장 아끼며 맨해튼 저택 거실에 걸어두었던 피카소 그림 아래서신문을 읽고 있다. 1천억 원이 넘는 이 피카소 그림을 포함해 평생 모은 컬렉션이 5월 8일부터 크리스티를 통해 5천억 원 이상에 모두 팔리게 되고, 그의 유언에 따라 하버드대학 등에 전액 기부된다.

[아츠앤컬쳐] 뉴욕 집값과 호텔비가 비싼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제한된 면적의 뉴욕 맨해튼 지역으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맨해튼은 16세기 유럽인들이 처음 상륙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숲과 호수가 있고 개울이 흘렀던 자연 그 자체였으나, 이제는 대부분이 뉴욕 맨해튼에 직장을 두고도 집값이 비싸 강을 건너 뉴저지나 롱아일랜드 등에 살며 힘든 출퇴근을 한다.

왜 사람들은 뉴욕으로 몰려들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뉴욕의 매력 중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문화적 힘이다. 서부 실리콘밸리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LA를 영화의 도시라 해도, 라스베이거스에 판타지가 있어도 미국 제일의 매력적 도시로는 문화의 도시, 뉴욕을 꼽는다.

무엇이 뉴욕 문화의 상징일까. 당연히 뉴욕필은 아니다. 베를린필, 빈필,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에 비하면 뉴욕필은 한참 밑이다. 최근에는 두다멜이 이끄는 LA필에도 밀리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뉴욕 문화로 세계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뮤지컬의 거리 브로드웨이다.

센트럴파크 내부에 당당히 선 메트로폴리탄도 그렇다. 그런데 미술 마니아들이 뉴욕에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보다 더 좋아하는 곳은 실은 근현대 컬렉션 위주의 MoMA다. 이것은 마치 미술애호가들이 파리 방문 시 중세 근대 위주의 루브르 미술관보다 근현대 컬렉션이 강한 오르세 미술관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과 같다.

MoMA는 나라가 세운 미술관이 아니다. 석유 재벌 록펠러의 아들 록펠러 2세가 자기 집을 기증해 세운 미술관이다. 그래서 록펠러 가문은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일으킨 메디치 가문에 비유되기도 한다. 결국 오늘날 뉴욕을 세계적 문화도시로 만든 핵심 인물 중의 한 명, 아니 한 가문은 바로 록펠러 가문이다.

2018년 5월 8일부터 10일까지 록펠러 가문은 다시 한번 세상을 뒤흔든다. 록펠러 3세, 데이비드 록펠러(1915~2017)가 평생 모아왔던 미술품 컬렉션 5,000억 원어치 이상을 일거에 경매에 부치는 것이다. 크리스티를 통해 진행될 이 세계적 경매 행사는 단일 컬렉션의 일시 경매로는 역사상 최고 금액을 경신할 것이 확실시된다. 여기에는 피카소, 마티스 등 명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록펠러가가 갑자기 경제위기를 맞아 팔아치우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 록펠러 3세가 평생 모은 컬렉션 일체를 모두 팔아 다시 할아버지 록펠러 2세가 세운 MoMA와 하버드 대학, 록펠러 대학 등에 연구기금으로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에 자손들이 그 유언을 그대로 집행하는 것이다. 록펠러 4세는 아버지로부터 미술품을 단 한 점도 물려받지 않고 다시 컬렉션을 무에서 시작한다. 이것이 록펠러 가문의 전통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록펠러 가문과 같이 멋진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일부 재벌가가 세운 미술관, 문화재단 등은 상속세를 피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극히 일부 재벌가는 세금 탈루 정도가 아니라 폭력, 폭언, 갑질 등 부정적 뉴스에 빈번히 등장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언제 우리도 록펠러 가문처럼 성숙한 재벌 문화에 박수를 보내게 될까.

남한과 북한이 몇 년간 교류가 없다가 최근 갑자기 화해 분위기를 맞게 됐다. 여기에도 미국의 힘이 작용했다고 들린다. 미국의 힘이 태평양을 건너 한반도에까지 지금 이 순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문화의 힘만 강한 것이 아니라 군사, 경제, 정치 거의 모든 면에서 지구상 최강의 힘을 과시 중이다.

미국을 강국이라 하는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록펠러 가문이 보여주고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쥬다. 미국 사회는 부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국 사회와는 전혀 다르다. 빌 게이츠, 워런 버핏으로 이어지는 미국 부자 순위는 바로 세상에 대한 도네이션 순위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한국에서도 어떤 기업인이 평생 모은 재산 또는 컬렉션을 상속세 절감용 재단이 아닌 한국 사회에 직접적으로 진정으로 기부한다는 뉴스가 나올 것을 믿는다.

글 | 강일모
前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경영학박사/ 음악학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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