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1985년, 필자가 유학 초기에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 어린 집시들의 날렵한 손재주에 어이없이 당했던 적이 있다. 잃어버렸던 여행자수표(TC) 3천 달러는 결국 6개월이 지나서 전액 보상을 받았었는데… 현지 로마 경찰서에 신속하게 수표분실신고를 마치고 서울 외환은행 본점에도 신고를 했지만 하루도 안되어서 이미 600달러를(싸인을 위조해서) 누군가가 썼다는 얘길 은행측으로부터 들었었다. 그러면서 은행 측은 혹시(두 군데) 서명을 다해 놓고 잃어버린 게 아니냐며 의구심을 갖기에 국과수(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필적감정을 의뢰하라고 단호하게 말했었다. 필적감정은 글을 쓸 때, 사람마다 각자의 독특한 뇌의 흔적이 있어서 이를 토대로 분석한다고 한다. 뇌에도 지문이 있다는 얘기다.
이번 이우환 작가의 위작 시비와 관련해서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은 감정을 한 7점이 가짜라는 입장을 밝혔고, 수사를 맡은 경찰은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는데, 경찰이 압수한 13점과 국내 유명 미술관이 소장한 이우환 화백의 진품 6점을 법화학 기법 및 디지털 분석 기법으로 비교 분석한 결과 진품은 물감 성분이 서로 유사하고 캔버스의 제작기법이 동일하나, 압수 그림들은 물감 성분 및 캔버스 제작기법이 진품과 다르다며 가짜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이우환 작가가 수사에 참여하고 싶다는 강한 의사를 밝힌 후 위작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작품은 자신이 그린 진품이라며 국과수가 내린 결정을 뒤집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우환 작가의 진심은 무엇일까?
이우환 화백은 한국인으로 생존해 있는 작가 중 가장 비싼 작품료를 받고 있는 작가이다. 초기에 설치미술을 하다가 나중에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점과 선, 바람에 이어 ‘조응과 대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었다. 이미 부와 명예를 거머쥔 그가 왜 혼탁한 미술시장에 직접 뛰어들어야 했는지 궁금하다. 돈 때문에? 아니면 미술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 위작이라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판정을 뒤집을 수 있을지 결과가 궁금하다.
근래들어 미술계는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천경자 화백의 위작 시비에다 가수 조영남의 대작 논란, 그리고 이우환 화백의 위작 사건을 보며 드는 생각은 현재의 그림 유통 과정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림에 호당 가격을 적용하는 문제도 차제에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다. 그림 크기에 따라서 가격을 정하는 것은 한국에서만 이루어지는 관행이라고 한다.(물감 재료와 종이값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손님이 시계점에 가서 값 싼 큰 괘종시계를 사면서 고가의 작은 손목 시계를 덤으로 끼워 달라고 했다는 오래된 유머가 떠오른다.
글 | 전동수 발행인
음악평론가, 대한적십자사 미래전략특별위원, 코러스나우 상임 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