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인공지능 알파고와 한국의 이세돌 9단 간의 세계적 대국이 결국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다. 결과적으로 바둑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일어난 것은 물론이고 아직은 낯선 인공지능이 일반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엄청난 홍보 효과를 얻은 이벤트였다. 신드롬이라고까지 느껴지는 이번 대국은 인공지능이란 존재에 대한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세계가 동시에 경험하게 한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과연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을 어디까지 바꿀 것인가에 대한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난립하는 가운데 암울한 미래 예상에 우울감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많아 보인다. 이번 대국을 주관한 G사는 상용화의 문턱까지 개발을 마친 자율주행 자동차 분야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알파고가 단 1승도 허락하지 않았다면 자동차 산업도 탄력을 받았겠지만 비록 지금 당장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어도 주행 중에 운전대를 잠시 자동차에게 맡길 수 있는 날은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이 될 것이다(그 반증으로 G사의 주식 시가총액은 58조 원이 늘어났다).

더불어 인간이 새로운 기술과 관련된 법적 윤리적 문제를 고민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지금 기술 발전 속도라면 택시기사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가능성 89%, 텔레마케터 99%, 스포츠 심판 99%, 금융 전문가들조차도 사라질 가능성이 28%이다. 암울한 것은 이런 일이 20년 안에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초등교사, 사회 복지사, 레크레이션 치료사 같은 직업이 사라질 가능성은 0.2~0.4%로 가능성을 점치고 있단 말입니다.”

오래전 보았던 공상 과학 TV시리즈 ‘스타트랙’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다룬 적이 있다. Voyager 비행선 승무원들 중 취미로 노래를 즐기고 또 잘하는 의사가 나오는데 그는 올드 팝송부터 이탈리아 가곡, 오페라 아리아(‘La donna e mobile’ 베르디 작곡 오페라 <Rigoletto> 中)까지 부르는 아마추어 성악가다. 그는 감정을 노래에 담아 듣는 이로 하여금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적인 노래를 부른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 기술보다 많이 앞서있는 외계의 사람들과 접촉을 하게 되고, 비행선에 승선한 그들은 의사가 부르는 노래에 감동해서 자신들의 별에 남아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한다.

결국 의사는 선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슈퍼스타로 대우하는 그 별에 남는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그 별의 사람들은 인공지능 컴퓨터를 통해 그 의사와 똑같은 모습으로 복제 홀로그램을 만들어 그와 같이 베르디의 오페라 <Don Carlos>에 나오는 남성 오페라 듀엣(‘Dio, che nella ma infondere…….’)을 부르는 음반까지 발매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을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광대역의 음역을 가지고 현란한 기교를 구사하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그 의사는 기술이 최고의 가치인 그 별에서 필요 없는 존재가 되었고 은퇴 공연에서 잃어버린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이탈리아 가곡 ‘Rondine al nido(Vincenzo de Crescenzo 작곡)’를 감동적으로 부른다. 그러나 역시 홀로그램의 완벽한 고난도 기교에만 열광하는 별나라 사람들.

그들을 뒤로하고 자신이 몸담았던 Voyager 비행선으로 초라하게 돌아온 의사.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그의 노래를 순수하게 좋아했던 동료들이 그의 복귀를 열렬하게 환영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노래하는 박사가 있어야 할 곳은 그의 노래 기술을 사랑한 별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그의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비행선이었던 것이다.

기술의 발달은 막을 수가 없다. 4차 산업혁명은 싫든 좋든 진행 중이고 인공지능은 점차 우리 생활 속으로 더 많이 더 깊이 들어올 것이다. 우리가 듣고 있는 음악 분야를 보아도 스타트랙의 이야기가 허황된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요즘 대중음악 장르 중 어떤 장르는 멜로디만 집어넣고 리듬 정도만 정해주면 나머지는 부분은 컴퓨터가 알아서 자판기처럼 찍어 내주는 시대가 되어버렸고 자연을 닮은 사운드가 아니라 기계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을 더 많이 듣고 있기 때문이다.

창의성 문제는 둘째치고 이미 인공지능이 만든 음악과 그림들은 인간의 것과 크게 구별이 되지 않는다. 우리도 의사를 내쫓은 기술 문명의 별 시민들 같이 감동보다는 고난도 기교에만 박수를 보내는 존재들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기술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 기술도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니까. 그러나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진 않지만 인간이 가진 사라져가는 소중한 것들을 더 이상 소홀히 해선 안 될 시간이 왔다. 때문에 언제나 이기는 점만을 완벽히 찾아내는 알파고보다 시작부터 불리한 흑돌을 가지고 “못 먹어도 고!” 하는 이세돌 9단의 인간적인 모습이 더 감동적이고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이다.

신금호
경기도 교육연수원 발전 전문위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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