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최근 다녀온 유럽은 엄청나게 덥다고 해서 단단히 마음먹고 갔는데 필자가 찾은 10일 정도의 짧은 기간 만큼은 아주 쾌적한 한국의 가을 날씨 같았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 돌아와 열대야에 적응이 어려워 자연스럽게 시원한 극장을 찾게 되었다. 짜증 나는 찜통더위에는 액션 영화가 그만이다. 그래서 최근 본 영화의 선택은 ‘미션 임파서블 5’. 매년 여름에 나왔던 시리즈 영화인 줄 알았는데 5편 나오는 데 20년이 걸렸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실제로 1996년 첫 편을 시작으로 4~6년 정도의 인터벌이 있었다. 그동안 바뀌지 않은 건 잘생긴 주인공 ‘탐 크루즈’뿐인 것 같다.
이 영화가 20년이 지나도록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5편의 영화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같은 감독이 한 명도 없고 매번 다른 스타일의 이야기와 액션이 펼쳐진다. 게다가 이번 시리즈에서 더욱 눈길을 끄는 장면은 오페라 극장에서 펼쳐지는 암살 사건이다, 예고편에서 스쳐 지나가 전혀 알 수 없었던 ‘비엔나 슈타트 오퍼(비엔나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펼쳐진 푸치니의 마지막 미완성 오페라 ‘투란도트’가 배경이었는데 오스트리아 총리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저지하기 위한 주인공의 액션이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페라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칼라프 왕자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 (Nessun dorma)’의 마지막 음에 쏟아져 나오는 성악가의 목소리와 오케스트라에 맞춘 저격 포인트, 펼친 악보에는 발사 순간을 표시한 장면이 나오는데 암살범이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여인인 데다 복잡한 오페라 악보를 볼 줄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필자에겐 매우 매력적으로 비추어졌다. 순간 뇌리를 스친 또 다른 첩보영화 ‘007 퀀텀 어브 솔러스’, 영화 중간 아름다운 호수 위에서 펼쳐지는 오페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브레겐츠 오페라 페스티벌, 그곳에서 오페라와 액션이 절묘히 오버랩 되었는데 그때 연주된 오페라 역시 이번 ‘미션 임파서블5’에 등장한 오페라 ‘투란도트’를 작곡한 ‘푸치니’의 ‘토스카’였다.
게다가 ‘미션 임파서블’ 영화의 감초 역할을 하며 주인공을 돕는 ‘벤지’라는 역할의 배우가 컴퓨터 게임을 하는 장면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서곡이 그가 쓰고 있던 헤드폰을 타고 흘러나온다. 마치 영화 ‘킹스 스피치’에서 조지 6세가 자신의 마이크 울렁증을 극복하기 위해 헤드폰을 쓰고 세익스피어의 ‘햄릿’의 명대사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로 시작하는 문장을 읽어가는 장면에서 헤드폰에서 나던 음악이 ‘피가로의 결혼’ 서곡이었는데 그 장면 역시 머릿속에 겹쳐졌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 무대 위와 뒤에 있는 무대 장치들과 조명들이 얼마나 복잡하게 돌아가는지도 잘 보여주었는데 감독의 아이디어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현대의 오페라는 조종실의 복잡한 기계장치를 통해 컨트롤 되지만 아직도 ‘비엔나 슈타츠 오퍼’같은 일류 극장에는 수동식 기계장치를 움직이는 장치밧줄들도 많이 있는데, 짧지만 영화를 잘 보면 발견할 수 있다.
무대에서 수동 장치가 아직도 필요할까라고 생각되겠지만, 대표적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바로 메인커튼을 올리고 내리는 장치다. 얼핏 보기에 편리하게 커튼을 자동으로 올리고 내리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무대의 커튼은 매우 신속하게 때로는 느리게 음악에 맞추어 움직여야 하는데 실황으로 연주되는 오페라는 템포가 계속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에 맞추어 무대감독이 큐 사인을 주는데 밧줄을 당기는 전환수들의 호흡이 잘 맞으면 기계로 올리고 내리는 것보다 멋진 커튼의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인간의 아날로그 감성이 필요한 부분이라 아직도 세계 일류극장에서는 오페라 커튼을 수동으로 움직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번 영화의 크리스토퍼 멕쿼리 감독 역시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액션보다는 최대한 아날로그 액션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컴퓨터가 우리의 눈을 완벽하게 속일 수 있을 때가 온다면 모를까 아직까지는 사람냄새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사실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번 여름 비엔나에서 직접보고 온 ‘비엔나 슈타츠 오퍼’가 헐리우드액션 영화에 등장하는 걸 보며,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 부러운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전 세계 사람들이 또 그 극장에 한번 가보기 위해 얼마나 난리를 칠지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영화 ‘어벤져스2’에 등장한 반포지구의 둥둥섬(지금은 표류하는 인상을 없애려 ‘세빛섬’으로 개명했단다). 가상의 과학연구소가 아니라 원래의 제작 의도대로 ‘007’이나 ‘미션 임파서블’에 등장하는 오페라하우스로 올라갔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그럼 지금쯤 세계 오페라 마니아들이 무조건 가고 싶어 하는 명소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영화 찍는다고 경제적 효과 높다고 서울 길거리를 비워 주고 세계인들의 눈에 맞춰 법도 바꾸면서까지 외자 유치하는데 왜 예술은 우리 것 남의 것 나누는지 모르겠다. ‘오페라를 보는 대중은 별로 없으니 그 장소는 팝 콘서트나 뮤지컬 공연하는 장소로 쓰는 게 실용적이다’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세계적인 랜드 마크로서 시작한 취지와는 이미 멀어진 지 오래다. 그곳에 얼마 전 우연히 들렸더니 완구 떨이 행사 중이었다. 어려운 시절이지만 앞으로 우리나라가 세계의 문화 시장에서 강력한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예술을 바라보는 넓은 시각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신금호
경기도 교육연수원 발전 전문위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