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화가 클림트의 작품 ‘The Kiss’를 들고 있는 프로이트
오스트리아 화가 클림트의 작품 ‘The Kiss’를 들고 있는 프로이트

 

[아츠앤컬쳐] 모차르트(1756~1791)가 고향 잘츠부르크를 뒤로하고 비엔나로 주 무대를 옮겼다는 소식에 합스부르크의 황제 요제프 2세(1741~1790)는 자신의 궁으로 모차르트를 초대한다. 이 전도 유망한 젊은 음악가를 위해 궁정악장 살리에리(1750~1825)에게 <환영 행진곡>을 작곡하도록 명했고 모차르트가 입궁하는 동안에 황제 자신이 피아노 앞에 앉아 그 곡을 손수 떠듬떠듬 연주한다. 멀리서 걸어 들어오면서 고작 한 번 들은 <환영 행진곡>을 모차르트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외워 연주했고, 한술 더 떠 즉흥적으로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지 않겠냐며 무지막지하게 변주를 해버린다.

변주라기보다는 화성만 같지 완전히 다른 곡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 광경을 보며 여러 사람이 궁정악장 살리에리의 표정을 살피는데 애써 여유로운 척하지만 얼굴에선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하는 당황스러운 감정이 다 드러난다. 이때부터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재능에 질투를 느끼고 모차르트의 죽음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설정으로 영화 <아마데우스>가 만들어졌다. 위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필자에겐 이 영화가 재미뿐 아니라 비엔나의 모차르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리고 주변 인물들과 시대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주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역할은 실로 대단했다. 특히 음악가들은 비엔나로 가야 국제적 명성을 쌓을 수 있었기에 모두들 비엔나를 외치며 입성했다.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자본이 문화에 투자되었다는 의미고 그래서 여타 다른 곳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큰 규모의 작품들이 올라갔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장르가 오페라였고 심지어 도시 외곽의 작은 극장마저도 화려한 무대장치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재정이 확보되어 있었다. 이는 영화 <아마데우스> 중 비엔나 외곽 일반 대중을 위한 극장 ‘프라이하우스 극장’에서 자국의 언어로 만든 오페라 <마술피리>가 처음 올라갔을 때, 화려한 무대장치와 특수 효과에 관객들이 열광하는 장면을 통해 보여진다.

모차르트 이후 비엔나는 점점 더 수많은 명작곡가가 활동하면서 그들의 작품들을 연주하기 위해 뛰어난 기량의 연주자들이 지금 미국의 브로드웨이만큼 모여들었을 것이다. 19세기 비엔나는 음악가들에겐 꿈을 이루어 줄 도시였다. 지금도 비엔나는 ‘꿈의 도시’라는 공식적인 별칭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꿈이 잠을 잘 때 꾸는 꿈을 의미한다는 것, 즉 음악가가 아닌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라는 정신과 의사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의미는 다르지만 모차르트시대의 비엔나 시대상과 참으로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별명이다.

사실 프로이트는 <뱀장어의 생애 주기 연구>에 몰두하던 괴짜였는데 이렇다 할 성과가 없자 정신분석과 최면이라는 전혀 다른 노선을 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꿈의 해석(Die Traumdeutung, 1899)>이라는 저서를 내면서 그때까지의 정신세계를 연구하는 방법에 전혀 다른 개념의 돌을 던졌다. 20세기 가장 획기적인 두 사람을 꼽는다면 물리학의 아인슈타인(1879~1955)과 바로 정신분석학의 프로이트라고 할 정도로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꼽힌다. 무의식이라는 개념으로 우리의 정신세계를 분석할 수 있고, 그로 인해 결과적으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생각이 생겨난 것이다. 물론 맞지 않는 부분도 많이 있다고 지금의 의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을 가지고 비평하는 것이야 쉽지만 처음으로 그런 이론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프로이트의 이론 중 인간의 인격 형성 발달 단계에 있어서 두 가지 콤플렉스가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이다. 둘 다 신화에서 유래된 용어인데 한때는 절친했던 칼 구스타프 융(1875~1961)과 함께 붙인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오이디푸스’, 그리고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에게 복수하는 ‘엘렉트라’에서 가져온 용어인데 인간이 성장 과정에서 겪는 정신적 혼란을 표현한 용어이다. 이 이야기는 오페라로도 만들어졌는데 스트라빈스키(1882~1971)가 작곡하고 장 콕토(1889~1963)가 대본을 쓴 <오이디푸스 왕(1927)>과 빈 국립 오페라 극장장까지 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의 오페라 <엘렉트라(1909)>다.

우리에겐 좀 생소한 <엘렉트라>의 내용을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목숨을 걸고 전쟁을 치른 남편이 집에 돌아 왔다가 부인의 외도 장면을 목격하고, 적반하장으로 부인이 외도남과 힘을 합쳐 남편을 살해한다. 이 부부 사이엔 자식으로 남매가 있었는데 결국 이 남매는 어머니와 외도남 둘 모두를 죽이게 되고, 그 딸의 이름이 바로 ‘엘렉트라’이다. 매우 비극적이고 지금 시대에 보아도 과장되어 보이는 소위 막장드라마가 기원전 8세기에 활동했던 호메로스(BC 800~750)가 저술한 <오디세우스>와 <일리아스>라는 책을 통해 지금까지 전해 오는 것이다.

요즘 고전을 이해하자는 인문학에 대한 고찰이 한국 사회에서 대유행이다. 인간은 지금 눈으로 보고 계산한 결과가 아니라 경험의 축척을 통해 옳다고 판단하는 쪽을 우선적으로 선택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전 선배들의 경험을 흡수해서 엄청난 내공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꿈을 좇던 프로이트가 진짜 말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꿈을 잃지 마라!’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신금호
경기도 교육연수원 발전 전문위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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