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멘의 죽음으로도 해결되지 않은
[아츠앤컬쳐]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연극을 하고 싶었던 모범생 학생이 있었다.꿈을 반대하는 아버지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명문 사립학교의 상위 성적을 유지하며 몰래 꿈을 키워가던 그는 결국 아버지에 의해 발각되어 강제적으로 꿈이 좌절되자, 그날 밤 서재에서 아버지의 총으로 목숨을 끊는다. 학교는 발칵 뒤집히고 죽은 학생의 자살 충동에 불을 질렀다고 몰린 키딩 선생님(로빈 윌리암스扮)이 희생양이 되어 학교를 떠나게 되지만, 학생들은 그를 진정한 인생의 선생님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의 영화다.
배우 로빈 윌리암스의 대표작으로 기억되는 ‘죽은 시인의 사회’는 1989년 필자에겐 고교시절 입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보면서 심하게 공감했던 영화로 기억에 남아있다. 꿈을 빼앗긴 청년이 마지막 순간 ‘내가 사랑한 것을 당신이 빼앗아 간다면, 당신도 당신이 사랑한 것을 잃어보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예나 지금이나 과잉 경쟁 입시는 여러 사람 잡는 것 같다. 필자도 고3이나 되어서 늦게 시작한 음악이었기에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하고 싶던 성악을 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적당한 예일지 모르겠지만 TV에 토끼가 나올 때마다 아내가 종종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어릴 적 두 마리의 토끼를 길렀는데 어느 날 보니 자기들 성질에 못 이겨 두 마리 모두 죽어버려 있더라는… 이게 무슨 비과학적인 이야기인가? 했는데, 그러고 보니 언젠가 하마라는 동물 역시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냥 죽어버린다는 이야기를 TV 동물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해 죽어버리는 동물이 있다니 신기하다. 하지만 요즘 언론 매체를 접하다 보면 결코 동물만의 일이 아닌 듯하다.
근 몇 년간 뉴스에는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분노조절장애’라는 이야기가 유독 많이 나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OECD 자살률 1위 자리를 10년 넘게 차지한 한국 사회가 이제는 설상가상으로 사회 전체가 들끓고 있는 분노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고속도로 보복운전, 길 가던 행인에 대한 묻지마 살인, 실연보복살인 등 이건 뭐 헐리우드 스릴러영화에나 나올 법한 소재가 이제는 우리의 눈앞에 언제든 펼쳐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일상이 블록버스터 호러물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순간적인 분노 때문에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고개를 들지도 못하는 범죄자가 되어버린 그들, 변명의 내용은 대부분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기분 나쁘게 쳐다봐서 그랬다.’ ‘너무 화가 나 순간 정신을 잃었다.’와 비슷한 레퍼토리들이다. 심리학적으로 분석해야만 알 수 있는 복잡한 이유가 아니다. 단순한 이유인데도 우리는 그에 적절한 치유방법을 확실히 찾지 못하고 있다.
‘국·영·수’ 무한경쟁시대에 어릴 때부터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배우지 못한 우리는 결국 매우 원초적이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방법만 따라가고 있다. 젊은이들은 클럽의 커다란 스피커 앞에서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더 신나고 더 흥겨운 무언가를 찾아 밤늦게까지 길을 헤매고 있다. 영화는 살인을 대리만족시켜주듯 신나게 수백 명의 인간이 죽어 나가는 영상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하도 봤더니 이제 그마저도 별 감흥이 없다. 그래서 예술도 점점 강한 어조를 띄고 자극적 내용을 다루게 되는 것 같다.
지금과 비교하면 애교 정도로 보이지만, 1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1875년 프랑스 파리, 성격이 얌전해 좋아하던 여자에게 말도 못 걸었던 프랑스의 천재 작곡가 비제(Georges Bizet, 1838~1875)는 도저히 그의 성격으로 봐서는 말도 안 되는 작품을 발표했다. ‘모가도르1)’라는 별명을 가진 유명 연예인을 모델로 한 오페라 ‘카르멘’이었다.
담배공장에서 일하는 집시 출신의 하층민 여인과 사랑에 빠진 젊은 엘리트 군인 호세의 막장 드라마, 사랑과 전쟁 이야기이다. 탈영까지 하면서 카르멘에게 충성했건만 결국 이용만 당하고 폐인이 된 호세에게 남은 건 사랑뿐인데, 그녀에게는 이미 잘나가는 투우사 애인이 있고, 그나마 군인이라 봐줄 만했던 호세는 이제 가진 것 하나 없이 찌질하다. 카르멘의 선택은 물으나마나였고 결국 호세는 그렇게도 사랑하던 그녀를 칼로 찔러 죽인다. 그리고 외친다. “카르멘! 내 사랑!” 호세는 완전 싸이코다! 그런데 어쩐지 어제 TV뉴스에 나온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다.
지금도 이런 내용은 청소년들에게 보여주기에 부적절한 내용인데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서 이런 오페라는 가당치도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카르멘’은 관객들의 악평과 함께 폭삭 망했다. 게다가 첫 공연 3개월 후에 스트레스가 컸던지 작곡가 비제는 36세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하지만 140년이 지난 현재,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가 ‘카르멘’이라니 비제에게는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현대인들은 각자가 과거 한 나라의 왕이나 접할 수 있었던 정보의 양을 매일 다루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매우 빠른 변화를 감당해야하는 스트레스를 견디며 살고 있다. 우리에게 또 하나의 숙제로 던져진 ‘스트레스성 분노조절 장애’. 오늘 오페라 ‘카르멘’ 한 편 보면서 분노조절이나 해볼까? 어떻게? ‘저렇게 살진 말아야지.’하면서…
1) 프랑스의 맹공을 받고 있던 모로코 난공불락의 요새
신금호
경기도 교육연수원 발전 전문위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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