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ake’s Progress,
난봉꾼의 인생역정
[아츠앤컬쳐] ‘까까야 크라시바야! (Kakaya Krasivaya)’ 요즘 K항공사의 CF 중 세인트 피터스버그(상트페테르부르크, St. Petersburg)편의 광고 문구이다. ‘당신은 참 아름답군요!’라는 뜻이라는데 러시아를 다닐 때는 아낌없이 쓰라고 말한다. 또한 거리의 여인들이 모두 아름다운 발레리나처럼 보이는 이 도시에 ‘발레만으로도 러시아에 올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광고카피도 내세운다.
실제로 지금까지 러시아의 발레는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데 무용에 대해 잘 몰라도 러시아 발레단의 아름다운 남녀 무용수들을 보면, 마치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인형들을 보는 듯한 착각과 한 번쯤 <백조의 호수>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러시아의 아름다운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세계적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1882~1971)’가 태어났다.
보통의 부모들이 그렇듯 자식의 성공을 바랐던 스트라빈스키의 부모는 그를 법학대학에 보내지만 전공에 취미가 없던 그는 대학 기간 동안 총 15회 정도만 수업에 출석할 정도로 법 공부엔 영 관심이 없었다. 이런 스트라빈스키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음을 알아차린 당대 러시아 음악을 이끌던 림스키코르사코프(Nikolai Rimsky-Korsakov,1844~1908)는 스트라빈스키를 설득해 음대에서 개인레슨을 받도록 했다. 그리고 제2의 아버지를 자청하며 죽기 전까지 스트라빈스키를 가르쳤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대표적인 발레단을 이끌던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1872~1929)는 러시아 발레를 프랑스에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1909년 스트라빈스키의 작품 ‘불새’에 감동해 풀버전으로 만들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결국 발레로 작품화해 1910년 초연(파리, 가르니에 오페라 하우스)을 올리게 된다. 또 곧바로 이듬해에는 광대들의 사랑과 비극을 다룬 ‘페트르슈카’(샤틀레 극장)까지 공연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러시아에서 날아온 특이한 음악가’정도의 평을 받고 있던 스트라빈스키는 1913년, 큰일을 치고야 만다. 함께 일하던 유명 발레 안무가 니진스키(Vaslav Nijinsky1890~1950)와 파리의 샴 엘리제(Champs-Élysées)극장에서,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을 선보여 세계 음악계를 둘로 나누는 초유의 논쟁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실제로 공연을 보고 있던 관객 중에는 중간에 나가버리거나 주먹다짐을 하며 싸우는 사람들까지 있었고 2막 공연에는 경찰들이 출동해 싸움을 말렸다 하니 매우 보기 드문 상황이었을 것이다.
“만약 스트라빈스키가 모든 관객을 지옥으로 던져버리고 싶었다면 이 공연을 통해 완벽하게 성공했다.”라는 평이 나올 정도였으니 그 혼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이 일로 주목을 받게 된 스트라빈스키가 이후 세계적인 작곡가의 반열에 들게 되니 이 당황스러운 해프닝은 결과적으로 그에게 좋은 일이 되었다.
한편 이런 그를 눈여겨 보던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코코 샤넬(Coco Chanel,1883~1971)이었다. 그녀는 스트라빈스키가 볼셰비키 혁명(1917)과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으로 인해 본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송금을 받을 수도 없는 어려움에 처하자, 그의 가족을 알맞은 거처를 찾기 전까지 파리 외곽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 머물도록 했고, <봄의 제전>의 새 프로덕션에 30만 프랑이라는 거액을 무명 기부하기도 했다.
스트라빈스키에게 베푼 일련의 호의가 무엇 때문이었는지, 그녀는 1947년 자서전에서 그 이유를 밝히고 있는데, 사실 그녀와 스트라빈스키는 소위 말하는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트라빈스키의 두 번째 부인인 베라와 설전이 오갔는데 요즘 같았으면 샤넬은 아마 허위사실유포 정도로 고소당하지 않았을까? 결론적으로 사실이야 어찌 되었든 호사가들 사이에서 떠돌던 이 이야기는 2002년 <코코와 이고르(Coco & Igor)>라는 제목의 소설로 발간되었고, 7년 뒤 영화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흥미로운 스캔들이었다.
스트라빈스키에게는, 언제든 남편을 버리고 재혼할 준비가 되어있던 무용수 출신의 유부녀 여자친구도 있었으나 어쨌든 그는 끝까지 가정을 지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결핵으로 오래 고생하던 첫째 부인이 죽자 그 이듬해 20년 가까이 그를 기다려온 유부녀 여자친구 베라 드 보세(Vera de Bosset, 당시 52세)를 드디어 두 번째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도대체 이 가난한 유부남 음악가의 어떤 매력에 그녀들은 끌렸던 것일까?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불같은 야성미와 파격적 자유분방함과는 달리 책임감이 매우 강했던 스트라빈스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대단히 노력했던 것 같다. 마치 그런 그처럼 음악도 원숙한 후반기에 들면서 바흐나 모차르트로 돌아가고자 하는 신고전주의 성향을 점차 강하게 띄게 되는데, 그 절정에서 그의 오페라 ‘The Rake’s Progress(1951)’가 탄생한다.
돈과 명예를 좇아 사랑하던 여인을 버리고 악마와 거래하는 어리석은 한 남자의 이야기로, 괴테의 <파우스트(1808)>와 비슷한 스토리를 갖고 있는데, 이는 당시 물질 만능주의에 빠진 현대인들을 풍자하고 있다. 깊이 있는 내용과 더불어 음악적으로도 신고전주의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대작인데, 마치 스트라빈스키 자신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 듯한 이 작품을 필자가 오는 10월 한국 초연으로 올리려 한다. 예술이라는 공통의 사명으로 서로에게 끌렸던 러시아 차도남과 파리 세기의 연인. 한낱 뜬소문에 불과할 수도 있는 그들의 이야기가 벌써부터 흥미진진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신금호
경기도 교육연수원 발전 전문위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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