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겨울나무 / 캔버스에 아크릴 / 19cm x 23cm. 2호 / 2015
그 해 겨울나무 / 캔버스에 아크릴 / 19cm x 23cm. 2호 / 2015

[아츠앤컬쳐] 엑상프로방스는 마르세유 북쪽에 있다. 아르크 강 우안에서 1.6㎞ 떨
어진 평야에 있는 이 시는 이탈리아와 알프스 산맥으로 이어지는 간선도로의 교차점이다. 나무가 늘어선 쿠르미라보의 북쪽에 옛 시가지가 있다. 11~13세기의 생소뵈르 대주교 관구 대성당 주위에 로마 시대의 유적과 중세시대의 건축물이 남아 있다. 쿠르미라보 남쪽에는 아름다운 17~18세기의 주택들이 많이 있는 신시가지가 있다.
지금도 신경통과 혈관 질병의 치료를 위해 이용되는 이곳의 온광천 가운데 섹스티우스 온천장이 가장 유명하다. 날씨가 화창하고 분수가 솟아오르는 엑스는 농업 중심지로서, 특히 세잔이 화폭에 담았던 프로방스의 올리브와 아몬드가 유명하다.
세잔의 화실은 이곳에 있는 여러 시립박물관 가운데 하나로 보존되어 있다.

미라보광장의 첫인상은 회전목마와 겨울인데도 따뜻한 햇살, 그리고 길게 늘어선 플라타너스였습니다. 광장과 거리를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세잔과 에밀졸라의 단골 카페였던 미라보거리 중간 쯤에 있는 ‘레 뒤 가르송(Les Deux Garcons)’을 찾았습니다. 졸라와 세잔의 초상이나 그림으로 장식된 실내를 잠시 둘러보고 햇살이 비치는 노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플라타너스 사이로 내리쬐는 오후 햇볕이 너무나 좋습니다. 세잔도 어딘가의 테이블에 앉아 이런 순간에 행복을 느꼈을 거란 생각을 하니 이 공간에서의 커피 한 잔, 식사 한 접시가 더욱 즐겁습니다.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고 세잔 스튜디오까지 골목 구경을 출발합니다.

해가 기울고 있는 거리 풍경은 밝음과 어둠의 경계에 있습니다. 건물의 반은 어둠으로 반은 노랗게 물들고 있는 풍경에 넋을 놓고 걸으면 얼마 가지 못해 걸음을 멈추고 또 멈추게 됩니다. 거리 바닥에 표시된 ‘세잔 아뜰리에’ 표식을 찾으며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다 고개를 들어보면 어느새 중심가를 벗어나 한적한 길로 들어섭니다. 언덕길을 따라 오르며 가끔 뒤를 돌아봅니다. 멀리 엑상프로방스가 붉게 변하고 있습니다.

세잔 아뜰리에 마당은 겨울의 기운을 그대로 품고 있습니다. 낙엽이 가득한 바닥에 놓인 철제 의자는 더 차갑고 쓸쓸한 풍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뜰리에 건물을 둘러싼 작은 산책길을 걷기도 하고 세잔과 관련된 영상이 상영되는 미디어실에 앉아 짧은 홍보영상도 살펴보고, 그가 남긴 정물화와 풍경화 화첩도 넘겨 봅니다. 하지만 세잔의 흔적을 찾아온 여행자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더 진하게 변한 엑상프로방스의 해 질 녘 풍경입니다. 세잔도 매일 이 순간을 보며 하루를 마감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슬퍼하고, 그림을 그렸겠지요. 여행자의 하루가 깊어지면서 그리움이 또 눈을 뜹니다.

글 | 배종훈
서양화가 겸 명상카툰과 일러스트 작가.
불교신문을 비롯한 많은 불교 매체에 선(禪)을 표현한 작품을 연재하고 있으며, 여행을 다니며 여행에서 만난 풍경과 이야기를 소소하게 풀어 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 현직 중학교 국어교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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