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체코 프라하 남서쪽으로 약 200여 km 떨어진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근처에 있는 체스키크룸로프는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번성을 누렸던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중세의 고성이다. S자로 완만하게 흐르는 블타바 강변에 있는 작은 도시로 붉은 지붕과 둥근 탑이 어우러져 동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이 도시는 1992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많은 여행객의 주목을 받고 있다. 13세기 남 보헤미아의 비테크 가가 성을 처음 건설하면서 이 도시는 700년 역사 동안 성의 주인이 여러 번 바꿈으로 고딕양식의 성, 바로크와 르네상스 등, 중세의 미술양식이 섞인 정원들이 중세 마을의 특징이 가장 잘 살아 있어 도시가 되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게 했다. 체스키는 ‘체코’를 의미하며, 크롬로프는 가로 지르는 블타바강의 모습이 ‘말발굽’과 같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아침은 가는 길에 있는 카페에서 간단히 빵을 먹었다. 13세기에 지어진 성을 중심으로 오랜 시간 그 자릴 지켜 온 도시 체스키크룸로프는 마치 팝업북처럼 만들어진 동화팩처럼 보였다. 어느 곳을 가도 이른 아침 시골 풍경은 어디나 비슷한 것 같았다. 아침을 준비하는 연기가 집집마다 솟아오르고 있었다. 안개와 어우러진 그 풍경으로 달려가는 것은 비현실적인 순간이었다.
블타바강을 끼고 들어선 도시의 골목길을 걷고 있으니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사진 속에 들어선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여행을 떠올리며 늘 상상하던 그 모습이 바로 이런 시간과 장소였을 것이다. 골목길 끝을 살며시 덮은 안개도, 누군가의 창틀에 놓인 철 지난 산타클로스 인형도 내가 늘 그리워하던 그것들이었다. 내가 여행에서 기대하는 것은 이렇게 비현실적인 공간과 시간인 것 같다. 꿈에서나 만날 수 있는 곳, 내 삶의 공간이 될 수는 없는 곳 말이다.
안개로 보이지 않던 골목 끝에 도착하니 낡은 가로등과 낮은 돌담 위에 올려둔 화분이 보였고 눈앞에 체스키성이 있었다. 그리고 또 저만치 내 그리움이 안개 너머로 숨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여행 안에 내가 그리워하는 여행이 숨어 있다.
여행의 순간을 기록하는 방법은 사진부터 그림, 영상, 엽서, 메모, 기념품 등 다양하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을 동원한다 해도 그 순간을 온전히 담아둘 수 없다. 그렇기에 또다시 떠나는 것이겠지. 기념품점에서 산 스노우볼을 흔들어 테이블에 내려둔다. 눈이 소복이 내리는 체스키의 모습이 벌써부터 아련하게 느껴졌다. 여행을 마친 어느 날 이곳의 느긋한 아침을 그리워할 내가 서울의 한 카페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글 | 배종훈
서양화가 겸 명상카툰과 일러스트 작가.
불교신문을 비롯한 많은 불교 매체에 선(禪)을 표현한 작품을 연재하고 있으며, 여행을 다니며 여행에서 만난 풍경과 이야기를 소소하게 풀어 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 현직 중학교 국어교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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