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손길이 머문 곳
[아츠앤컬쳐] 중부 로마에서 남부 나폴리로 티레니아 해를 따라 내려가는 중간 지점에 가에타(Gaeta)라고 하는 작은 만이 나오는데 이 만을 향해 조금 돌출된 부근에 위치한 항구 마을이 가에타 마을이다. 스트라본 기록에 의하면, 카이에타(Caieta)란 언어의 기원이 그리스어로 동굴을 뜻하는 Kaietas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해안 절벽을 따라 존재하는 크고 작은 다수의 동굴 지형을 갖고 있는 이 지역의 특성때문이라 판단된다.
가에타는 라치오(Lazio) 주 소속으로 현재 인구 21만 명을 형성하며 1967년 나토 기지가 들어설 만큼 로마시대서부터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중 가에타는 무솔리니(Mussolini) 및 나찌 동맹군에게 있어 전략적 요충지였는데 독일군은 연합군이 이곳을 점령할까 두려워 이 도시에 주둔하며 대부분의 가에타 주민들을 도시 밖으로 강제 추방시킨다.
이탈리아가 연합국에 항복한 이후 주민들은 가에타로 복귀하여 도시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가에타는 아름다운 해변과 산 프란체스코 성당을 비롯한 다수의 중요 교회 건축물 및 가에타 성, 천연 해안 동굴 등으로 여행객을 맞이한다.
가에타의 경치 좋고 물 맑은 해안 비치뿐 아니라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가에타만의 명소 두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편리하게도 이 두 곳은 바로 옆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 일명 터키 동굴(La Grotta del Turco)이라고 불리는 이 천연 해안 동굴은 깊이 50m로 300개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며 절경을 이룬다. 위에서 내려다본 갈라진 웅장한 암벽과 그 사이로 눈부시게 반짝이는 사파이어 빛 바다의 출렁임은 오랜만에 필자의 가슴을 뛰게 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 이스라엘 민족의 성막 안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길게 찢어진 것과 동일하게 이 부근 해안 절벽들이 그 순간에 세로로 길게 쪼개졌다고 한다. 갈라진 틈으로 오랜 세월 파도가 들이치고 그 침식작용으로 인해 커다란 동굴이 만들어진 것이다. 컴컴한 동굴과 대조적으로 햇살을 듬뿍 받은 동굴 밖 바다 색깔이 유난히 신비롭고 아름답다.
기이하게 갈라진 이 해안 절벽들로 인해 이 지역은 스파카타 몬타냐(Spaccata Montagna, 쪼개진 산)라는 명칭이 붙여진다. 이 스파카타 몬타냐에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나는데, 바로 이 갈라져 벌어진 암벽 공간에 11세기에 지어진 트리니타 성소(Santuario della Santissima Trinità)로 내려가는 좁은 틈길 벽에 명확히 새겨진 ‘터키인의 손(Mano dello Turco)’이라고 불리는 한 남자의 푹 패어진 다섯 손가락 자국이 그것이다.
손자국 위에 붙여진 설명글에 의하면 이 성소를 방문하던 터키 출신의 불신자였던 한 어부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관련된 스파카타 몬타냐의 기적을 믿지 않고 나오는 길에 암벽에 손을 갖다대는 순간 그 딱딱하던 암벽이 부드러운 진흙이 되어 손가락이 쑥 들어가며 그대로 자국을 남기며 다시 암벽이 되었다는 기적이었다. 이 기적을 믿는 많은 사람들의 경건한 어루만짐으로 깊이 패어진 손자국의 암벽이 주변 바위와는 다르게 기름을 발라 놓은 것 같이 유난히 매끈하고 빛이 난다. 필자도 감동 어린 마음으로 오른손을 살포시 갖다 대며 믿는 마음을 전했다.
이 작은 항구 마을에 이리도 엄청난 종교적 기적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에타 마을은 필자에게 아주 특별한 장소가 되었다. 아름다운 해안 절벽 비치에서의 릴랙스한 썬탠과 물놀이로 마음을 즐겁게 하고, 신의 손길이 닿은 기적의 명소를 찾아 가슴 뛰는 감동과 함께 자연의 신비스런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
글·사진 | 김보연
아츠앤컬쳐 밀라노특파원, 문화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