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1877년 7월 2일 독일 뷔르템베르크에서 출생한 헤르만 헤세는 선교사였던 부친 때문에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학교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중퇴한다. 그는 낭만주의에 심취했고 3번의 결혼을 했으며 세계 1,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을 반대한 평화주의자였다. 스위스 국적을 취득한 뒤에는 루가노 호수가 보이는 언덕에 살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수많은 수채화를 남겼다. 헤세는 1962년 8월 2일 뇌출혈로 85세의 생을 마감했다.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보리죽을 떠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있는 한 세상은 순수한 영혼의 화음을 울렸고 언제나 좋은 세상 옳은 세상이었다네.” 〈행복해진다는 것〉
헤세는 1919년에는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데미안>을 썼고 1931년에는 <유리알 유희>라는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수많은 저서와 함께 세계 유명인사들과 주고받은 많은 편지를 남겼는데 요절한 한국의 전혜린 작가와도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40세 이후에 헤세는 작은 그림이지만 3천여 점의 수채화를 그렸다. 고흐처럼 해바라기를 좋아했던 헤세는 그가 살던 곳의 풍경을 수채화로 많이 담아냈다. 또한, 수많은 고통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었다고 헤세는 고백했다. 그림을 그리는 자체가 그에겐 힐링의 시간이었다. 헤세는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꺾어진 가지>를 쓰고 일주일 후에 세상과 이별했다.
꺾어져 부스러진 나뭇가지,
이미 여러 해 동안 그대로 매달린 채
메말라 바람에 불려 삐걱거린다.
잎도 없이, 껍질도 없이 벌거숭이로 빛이 바랜 채
너무 긴 생명과 너무 긴 죽음에 지쳐 버렸네.
딱딱하고 끈질기게 울리는 그 노랫소리,
반항스레 들린다.
마음속 깊이 두려움에 울려 온다.
아직 한여름을, 아직 또 한겨울 동안을… 〈꺾어진 가지〉
5월2일부터 시작된 헤세와 그림들展은 11월1까지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다.
글 | 전동수 발행인
올레tv 클래식 프로그램 ‘프롬나드’를 진행하고 있으며 음악평론가, 대한적십자사 미래전략특별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