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서울의 올림픽대로를 운전하고 집에 오다 보면 한강의 야경에 가끔 유학시절 지나던 강가를 떠올린다. 강을 사이에 두고 아름다운 건물들의 조명들에서 나오는 로맨틱한 설레임? 그런 느낌들을 다시금 떠오르게 하는 ‘한강의 기적’은 이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뿐 아니라 과거 한국을 알았던 외국인들에게도 기적으로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이런 멋진 한국의 모습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우리 앞에 다가왔다. 불과 60여 년 전에 이곳은 전쟁터였다는 것을 쉽게 잊고 지내고 있다.

최근 1,200만 명이 이미 관람하고 줄거리까지 다 알게 되고 나서야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늦게 보는 영화라 한산할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들이 극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국영화가 많이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돈을 쏟아 붓는 할리우드 영화들에 비해 스케일 면에서는 아직 비교하기가 어려워 영화를 찾을 때면 같은 가격에 이왕이면 스케일 큰 영화를 찾아보곤 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한국영화는 TV를 통해 접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변 어른들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경험했던 6·25 전쟁의 생생한 기억들과 피난시절 그리고 어렵던 과거사가 스크린을 통해 나오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반면 ‘국제시장’의 감독 윤재균 감독이 젊은 세대로부터의 감상평은 ‘어쩌면 그렇게 허구를 진짜처럼 만들었나요? 정말 슬프고 감동적이었어요’라는 이야기란다. 현실이 허구보다 더 허구 같아서일까?

영화에 가장 눈물샘을 자극했던 KBS ‘이산가족 찾기’ 장면을 보다 보니, 어릴 적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보시며 하루 종일 우시던 어머니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나도 그때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 어두운 영화관에서 울고 있었다.

현대에서 전쟁의 이유야 어찌 되었든 결론만 보자면 일반 국민들에게 득이 되는 경우가 있을까? 최소한 전쟁 당대를 살았던 시민 국민들에게 무슨 영광을 안겨주었는가? 또한, 전장에서 죽어간 많은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의 영혼은 어떻게 설명되어져야 하는가?

이런 면에서 공감할만한 오페라 작품이 있는데 1920년에 쾰른과 함부르크에서 동시 초연된 ‘Die tote Stadt(죽은 도시)’라는 오페라 작품은 1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인들의 정신적 공황상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있는데 아내와 사별한 주인공의 이야기다, 아내와 똑 닮은 무용수를 보고 그녀를 향한 욕망과 죽은 아내에 대한 죄책감에 갈등하지만 강한 질투심으로 그녀를 두고 친구와 심한 다툼까지 벌이게 된다. 그리고 보관해 두던 죽은 아내의 머리카락을 장난스럽게 가지고 놀던 무용수 여인을 목 졸라 죽이게 된다. 순간 자신이 죽인 무용수는 온데간데없다. 관객까지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상상 살인……. 마치 서스펜스 영화 ‘식스 센스’를 넘어서는 최고의 반전을 제공한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며 ‘로빈 후드의 모험’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던 체코 출신 작곡가 코른골트(Korngold)가 만든 이 작품은 전쟁을 경험하고 아내를 잃은 우울증 환자의 이야기이다. 자신만의 환상 속에서 죽은 아내의 모습을 한 여인을 사랑하고 배신당하고 조롱당한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왠지 낯설지 않은 것은 왜일까?

우리나라에서도 질병 치료 인원 기준으로 우울증이 상위 109위(2013년 통계 기준)에 올라있다. 치료비 기준으로는 더욱 상위에 랭크된다. 전쟁 같은 현실을 견디어 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몸부림이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은 도시’보다 더 가까이 있는 현실에 소름이 돋는다.

그의 이런 현실에서 끝까지 주인공과 같이 있어 준 사람은 오페라의 처음부터 등장한 친구 프랑크다. 그러고 보니 ‘국제시장’의 주인공 달수에게도 끝까지 옆에 있어 준 달구가 있었다. 오랫동안 연락 못 한 친구에게 전화 한 통 해야겠다.

신금호
경기도 교육연수원 발전 전문위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 음악대학 /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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