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찾아 집을 뛰쳐나간 마리아는 사랑하는 청년 장교 블라디미르를 만나려고 약속 장소인 어느 교회에서 그를 기다린다. 한편 마리아를 만나러 약속장소로 가던 블라디미르는 갑자기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수많은 시간을 헤매다가 날이 저물고… 이로 인해 결국 두 사람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리고 블라디미르는 1812년 나폴레옹 전쟁터로 떠나게 된다는 슬픈 사랑 이야기이다.
7월 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필하모닉 정기연주회(지휘: 스테파노 세게도니 Stefano Seghedoni)에서 만난 러시아 작곡가 스비리도프(1915~1998 Georgy V. Sviridov)의 ‘눈보라’를 들으며 실로 오랜만에 가슴 뭉클한 감동적인 장면이 영화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2002년 가을, 인터콥이라는 선교단체가 주최한 ‘아프가니스탄을 위한 평화음악회’를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졌었는데 박태영 지휘자(현 수원대 음대 교수)가 스비리도프의 ‘눈보라’를 서울필하모닉의 연주로 인상 깊게 들려주었다. 당시에 필자가 직접 이 평화음악회를 기획・제작 했었기 때문에 아직도 그때의 감동과 기억이 생생하다. 모스크바에서 지휘공부를 마치고 한국에서 지휘생활을 시작한 박태영 교수가 야심차게 첫선을 보인 ‘눈보라’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모든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스비리도프(Георгий Васильевич Свиридов)는 레닌그라드음악원에서 쇼스타코비치(1906~1975/ 클래식부터 영화음악과 대중적인 재즈까지 여러 장르의 작품을 다양하게 작곡했다.)를 사사했는데 그의 음악은 러시아 색채가 강한 후기 낭만주의 음악이라고 볼 수 있다. 주로 문학적인 소재를 가지고 작곡을 많이 했는데 멜로디가 아름다운 가곡들을 많이 남겼다.
1974년에 스비리도프는 소설 ‘눈보라’를 스케치해서 ‘Musical Sketches’라는 부제를 달아 9곡(1. 트로이카/Troika 2. 왈츠/Waltz, 3. 봄과 가을/Spring and Autumn, 4. 로망스/Romance, 5. 전원곡/Pastorale, 6. 군대 행진곡/Military March, 7. 결혼식/Wedding Ceremony, 8. 왈츠의 메아리/Echo of Waltz, 9. 겨울길/Winter Road)을 발표하였다. 그중 네 번째 곡인 ‘로망스’는 마리아가 지난날의 아름다운 사랑을 회상하는 곡으로 애절함과 러시아 정서가 물씬 묻어나는 대표적인 음악이다.
1964년 러시아(당시 소련)에서 푸쉬킨의 소설 ‘눈보라’를 각색해서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작곡가 스비리도프가 영화음악을 담당했었고 이때 자신이 작곡한 ‘로망스’때문에 영화 ‘눈보라’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12년 만에 다시 듣는 7월의 ‘눈보라’는 매우 특별했고 상큼했는데 눈꽃빙수처럼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음악이 여름밤의 더위를 식혀주었다.
글 | 전동수 발행인
올레tv 클래식 프로그램 ‘프롬나드’를 진행하고 있으며 음악평론가, 대한적십자사 미래전략특별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한신대학교 서울평생교육원에서 ‘전동수의 발성클리닉’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