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인도네시아 자바 섬의 서부, 그러니까 서부 자바 지역을 순다 지역이라고 하고 이곳에 사는 종족을 순다족이라고 한다. 서부 자바 주는 3만 5천 ㎢에 5천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니 우리나라의 1/3되는 면적에 우리나라만큼의 인구가 살고 있는 주이다.

특정 지역의 민담은 단지 이야기의 자료에 그치지 않고 청중의 즉각적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소박한 예술적 기교도 가진다. 민담 속에는 신화, 우화, 영웅담, 그리고 요정이야기 등이 포함되어 있다. 구전되어 내려오는 똑같거나 아주 비슷한 이야기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발견된다. 순다족에게는 <상 꾸리앙>이라는 탄생 신화가 있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서부 자바의 빠자자란 왕국에 숭깅 뻐르방까라라는 왕자가 있었다. 어느 날 숭깅 뻐르방까라 왕자는 부하들과 함께 사냥을 나갔고 사냥이 끝난 후 시원한 야자수로 갈증을 풀었다. 숭깅 뻐르방까라 왕자 일행이 휴식을 취하던 야자수 부근 덤불에 쩰렝 와융양이라는 암멧돼지 한 마리가 숨어 있었다. 쩰렝 와융양은 사람으로 변하기 위하여 수도를 하는 중이었다. 쩰렝 와융양은 아침 내내 숭깅 뻐르방까라 왕자가 사냥을 하는 바람에 덤불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던 쩰렝 와융양은 숭깅 뻐르방까라 왕자 일행이 돌아가자마자 밖으로 나왔다. 쩰렝 와융양은 야자껍질에 고인 물을 먹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후 쩰렝 와융양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였다. 야자 껍질에 고여 있던 물이 숭깅 뻐르방까라 왕자의 소변이었는데 그것을 마시고 임신을 한 것이다. 몇 달이 지나고 쩰렝 와융양은 새끼를 낳았는데 그것은 멧돼지가 아닌 어여쁜 여자 아기였다. 그 다음 사냥철에 숲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나서 왕자는 그 아기를 대궐로 데리고 와서 다양 숨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다양 숨비는 베짜기에 재질을 보였는데 하루는 베를 짜는 도구의 하나인 북이 땅에 떨어져 혼잣말로 ‘저 북을 누가 집어다 주면 좋으련만. 저 북을 가져오는 사람이 여자이면 우리 언니로 삼고, 남자이면 남편으로 삼을 텐데...’라고 하였다. 그런데 북을 물고 온 것은 다름 아닌 뚜망이라는 개였다. 다양 숨비는 뚜망의 아이를 갖게 되었고 결혼도 하지 않은 공주가 아이를 갖게 된 것이 왕가의 명예를 더렵혔다고 생각한 숭깅 뻐르방까라 왕은 다양 숨비와 뚜망을 내쫓았다.

다양 숨비는 산속에서 뚜망과 아들 상 꾸리앙과 함께 살게 되었고 어느덧 소년이 된 상 꾸리앙은 뚜망과 함께 사냥을 하는 것이 일과였다. 어느 날 다양 숨비가 사슴의 간이 먹고 싶다고 하여 뚜망과 함께 사냥을 나가게 되었고 상 꾸리앙이 쏜 화살이 뚜망의 몸에 맞아 뚜망이 죽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양 숨비는 몹시 화가 나서 주걱으로 상 꾸리앙을 때리고 집에서 쫓아냈다.

십수 년이 흘러 상 꾸리앙은 건장한 청년이 되어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다양 숨비는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수련과 약초 덕분에 예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상 꾸리앙은 다양 숨비에게 사랑에 빠져 청혼을 하게 되었다. 다양 숨비도 상 꾸리앙과 혼인할 요량이었으나 어느 날 상 꾸리앙의 머리에 난 상처 자국을 보고 자신의 아들이라는 확신이 들어 청혼을 거부하였다.

영문을 모르는 상 꾸리앙이 혼인을 재촉하자 다양 숨비는 조건을 내세웠다. 즉, 하룻밤 안에 호수를 막고 배를 만들면 기꺼이 혼인하겠다는 것이었다. 상 꾸리앙이 두 가지 조건을 이루어가고 있을 무렵 다양 숨비는 자신이 짠 흰 천을 이어 펄럭이게 하였고 새벽이 온 줄 안 닭들이 울기 시작하였다. 이때 다양 숨비는 상 꾸리앙에게 다가가 정해진 시간 안에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으므로 혼인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반둥
반둥

그러나 상 꾸리앙이 이를 무시하고 다양 숨비에게 다가서는 순간 다양 숨비는 한 송이 꽃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에 화가 난 상 꾸리앙은 만들고 있던 배를 발로 찼고 그 배가 날아가 엎어져 땅꾸반뻐라후라는 산이 되었으며 그 의미는 ‘뒤집어진 배’라는 뜻이다.

반둥 사테빌딩
반둥 사테빌딩

반둥은 인도네시아의 3대 도시로 미인이 많기로 유명하고 1955년 <아시아-아프리카회의>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이 회의는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대통령, 중국의 저우언라이 총리, 인도의 네루 총리,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이 주도하였으며 결국 1961년의 제1차 비동맹국가정상회의의 토대가 되었다고 평가된다. 쾌적한 날씨의 반둥은 꽃의 도시이며 교육도시이다.

음식으로는 만두를 삶거나 튀긴 바타고르와 시오마이가 유명하며 둘러볼 곳으로는 상 꾸리앙의 전설을 가진 땅꾸반뻐라후산, 서부 자바주의 청사 사테(꼬치)빌딩, 찌아트르 등 주변의 온천이다.

글·사진 | 고영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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