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의 말랑(Malang) 지역에는 그들의 세시풍습을 엿볼 수 있는 반뗑안(Bantengan)이라는 소놀음이 있다. 반뗑안은 원래 반뗑(banteng)에서 유래한 말인데 이는 어의적으로 ‘들소’를 의미한다. 이 소놀음은 자바의 전통 음악을 배경으로 두 명의 장정이 검은색으로 된 들소 가면을 뒤집어쓰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춤을 추고 주변의 소몰이꾼들이 여기저기서 채찍을 내리치기도 한다. 그러니까 반뗑안은 정형화된 춤사위라기보다는 다소 자연스러운 형식의 들소 가면 놀이이다.

반뗑안은 동부 자바에서 13세기에 발흥했던 싱아사리왕국 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반뗑안은 이 지역의 전통 무술인 실랏(silat) 훈련을 마친 뒤 오락의 개념으로 두 편으로 나뉘어 소놀음을 한 것이 시초이다. 싱아사리왕국 시대에는 왕의 행차 등 중요한 행사에 들소를 함께 몰았고, 왕의 행차 후 그 들소들을 도살하여 고기를 나누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들소 가면은 전술한 바와 같이 두 명의 장정이 뒤집어쓰는데 한 사람은 앞발과 머리 부분, 다른 한 사람은 뒷발과 꼬리 부분을 조종한다. 이때 앞쪽을 조종하는 사람은 귀신에 홀린 듯 행동하며 뒷사람은 앞사람의 동작을 따라 한다. 이는 이 소놀음이 현실의 세계와 가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것을 상징한다. 가면은 들소의 뿔과 목재로 만드는 가면 부분과 검은 천으로 만든 몸통 부분으로 나뉜다. 들소 가면 뒤로 호랑이 가면이 뒤따르는데 이는 반뗑안 무리가 지나치게 행동하는 것을 저지하는 역할을 맡는다.

반뗑안은 집단예술로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협력하여 공연하는 것이 특징이다. 흡사 들소 무리가 공동생활을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자바 지역의 협동정신(anjang sana anjang sini)과 연관이 있는데 반뗑안 행사가 있을 때 이웃집이나 인근 마을과 협동하여 공연한다. 네덜란드 식민통치시대에 반뗑안은 식민통치 정부에 대항하는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는데 그것은 인도네시아를 상징하는 들소 가면 무리가 네덜란드 정부를 상징하는 호랑이 가면 무리를 공격하는 장면으로 표현되었다.

인도네시아 동부 자바의 지방정부는 반뗑안을 자신들의 문화 아이콘으로 육성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반뗑안을 널리 홍보하고 외국인을 유치하려고 한다. 반뗑안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독립기념일, 자바 종족의 설날, 혼사, 할례 등 중요시되는 날에 실시하며 50개 정도의 반뗑안 팀이 공연하고 5천여 명의 관중이 모이기도 한다.

행사 당일에는 대개 아침 7시경에 모여 준비 사항을 점검하고 이의 성공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린다. 그 후 행사 진행자의 지시에 따라 참여한 그룹들이 정해진 루트를 돌며 소놀음 행사를 하는 것이다. 동부 자바의 말랑 지역이 이 행사의 주축이 되고 있지만 그 이외에도 브로모, 뗑게르, 스메루, 안자스모로 등의 지역에서 반뗑안 행사를 하고 있다. 반뗑안 행사는 7월경에 동부자바의 브로모, 뗑게르 지역에서 개최된다.

글·사진 | 고영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 교수
 

 

저작권자 © Arts & Cultur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