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적어도 200년 전에 인도네시아 땅의 도로표지판에 표시된 특정 도시까지 남은 거리는 어느 곳을 뜻하는 것일까? 그러니까 도로표지판에 반둥(Bandung)까지 50킬로미터가 남았다면 반둥의 어느 기관까지의 거리일까? 반둥의 역 혹은, 시청? 둘 다 아니다. 그것은 반둥 우체국까지의 거리였다. 그만큼 당시 우체국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자바우체부길은 1808년 당시 인도네시아를 식민통치하던 네덜란드의 다엔델스(Herman Willem Daendels) 총독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엔델스 총독은 인도네시아를 통치한 36대 총독으로 루이 나폴레옹이 보낸 사람이다. 네덜란드는 당시 프랑스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고 루이 나폴레옹은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의 조카이다.

 

1807년에 자바의 서쪽에 도착한 다엔델스는 안야르(Anyar)에서 자바의 북쪽 해안을 거쳐 동쪽 끝 빠나루깐(Panarukan)까지의 도로를 폭 7m의 우체부길로 확장했다. 안야르에서 빠나루깐까지의 거리는 천km인데 이 대 역사를 1년 만에 끝냈다. 다엔델스는 매 4.5km마다 우체국을 하나씩 만들었으며 이로 하여금 자신들이 통치하는 지역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아울러 영국의 세력에 대비하여 자바 북쪽 해안에 강력한 해군력을 구축하려고 했다.

아무튼, 이 도로확장 프로젝트를 위하여 다엔델스 총독은 자바 각 지역의 인원을 강제로 동원하였고 이 과정에서 더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12,000명의 자바인들이 사망하였다.

 

이 우체부길은 자바의 서단 안야르에서 시작하여 POSCO 그룹에서 제철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찔레곤(Cilegon), 사라진 왕국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반뗀(Banten), 네덜란드의 셰익스피어로 추앙받는 두어스 데커의 소설 <막스 하뷜라르>의 배경이 된 세랑(Serang), 우리나라의 투자 공장이 들어서 있는 땅어랑(Tangerang),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수도 바타비아(Batabia, 현 자카르타)로 이어진다.

 

우체부길은 바타비아에서 방향을 약 간 남쪽으로 돌려 국립인도네시아대학이 소재한 데뽁(Depok), 세계적인 식물원이 있는 보고르(Bogor), 인도네시아군의 요충지 찌마히(Cimahi), 1955년 아시아-아프리카회의가 열렸던 반둥, 두부로 유명한 수머당(Sumedang)을 거쳐 다시 북쪽 해안 새우의 도시 찌레본(Cirebon)으로 이어지며 여기서부터는 북부 해안을 따라가는데 여러 도시들 중 바띡으로 유명한 뻐깔롱안(Pekalongan), 중부자바의 주도인 스마랑(Semarang), 아바 최초의 이슬람 왕국이 발흥한 드막(Demak)을 거쳐 인도네시아 제2의 도시이며 항구도시인 수라바야(Surabaya)에 이른다. 수라바야에서 기수를 남으로 돌려 시도아르조(Sidoarjo), 뽀롱(Porong), 빠수루안(Pasuruan)을 거쳐 목적지 빠나루깐에 이르게 된다.

 

필자는 얼마 전에 자바 우체부길을 여행한 적이 있다. 우체부길을 따라 펼쳐지는 자바의 풍광, 다양한 문화유산, 먹거리 등은 더위와 다소의 일상적인 불편함을 덜어주기에 충분하였다. 다만 자바의 동맥으로 동서를 관통하는 이 도로가 200년 전에 비하여 그리 확장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글·사진 | 고영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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