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역삼각형 모양의 발리섬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주도 덴빠사르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우붓(Ubud)이라는 예술 도시가 있다. 인구 3만 명이니 그리 큰 도시는 아니지만 우붓은 ‘인도네시아의 몽마르뜨’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예술로 알려진 도시라는 것을 반증한다.

이곳에는 독일 출신의 월터 스피스(Walter Spies), 스페인의 루돌프 보넷(Rudolf Bonnet)과 같은 저명 화가가 뼈를 묻은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다 죽었으며 그들의 미술관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영화로도 제작된 길버트(Elizabeth Gillbert)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배경이 되는 곳도 우붓이며 실제로 이곳의 해변에서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한 같은 제목의 영화를 촬영하기도 했다.

우붓은 발리어 ‘우밧’(ubad)에서 유래한 말이며 그 의미는 ‘약’이라는 뜻이다. 원래 약초와 허브 산지로 유명했던 우붓이 예술가의 마을로 거듭나게 된 것은 19세기 후반, 발리 남부의 가장 강력한 영주였던 기안야르(Gianyar)의 영토로 부속되면서부터였다.

원숭이공원
원숭이공원

기안야르는 예술 방면에 지지를 아끼지 않았고 이후 전 세계의 예술가들이 우붓에 정착하여 발리의 독특한 음악과 춤, 종교에 매료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면서 우붓은 그야말로 발리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화가들 이외
에도 홉커(Willem Hofker) 등 수 많은 외국 예술가들이 우붓에 정착한 바 있다. ‘인도네시아의 몽마르뜨’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리에서 쉽게 화랑이나 박물관을 접할 수 있다.

버사끼로 가는길
버사끼로 가는길

발리는 힌두교를 믿는 지역으로 토착인 화가들의 그림에는 힌두교의 내음이 짙게 풍긴다. 이는 이곳에 정착한 서양 예술가들이 주로 발리의 여성이나 토속적인 소재를 택한 것과 다소 차이가 있다. 자바에서 힌두 왕조 이후에 이슬람 세력이 확장하는 동안 발리가 힌두 문화를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발리가 향료무역에서 벗어나 있어 치열하게 향료전쟁에 참가했던 여러 외부인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었고, 자바의 힌두 마자빠힛 왕국이 쇠퇴징조가 보인 14세기 말 이후 16세기까지의 소강기에 진출한 네덜란드가 자바로부터 발리를 효과적으로 격리시켰기 때문이다.

jajan
jajan

네덜란드는 발리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이를 관광지원으로 이용해야 했다. 관광을 통한 경제적인 이득을 획득하고 전통보존이란 미명하에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 이슬람으로부터 발리를 차단하려고 했다.

특히, 자바에 드막(Demak)이라는 이슬람 왕국이 세워진 이후 마자빠힛 왕족의 후예들이 자바로부터 빠져나와 발리에 정착하고,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힌두문화에 기반을 둔 계층화작업과 의례를 강조하는 요인들이 발리의 힌두 문화 정착과 강화에 크게 작용했다. 이와 함께 왕국들의 증식으로 인한 경쟁의 한 부분으로 예술과 의례가 권력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장려되면서 많은 예술분야가 더욱 발달하기 시작했다.

우붓은 많은 외국인들이 어울리는 곳이어서 외국인에게 결코 낯설지 않은 곳이다. 뇨만 루다나(Nyoman Rudana)가 세운 <루다나미술관>에는 400여 점의 국내외 미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수까와띠(Sukawati) 예술시장은 그림, 목각 등 토속 예술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시장이다. 이곳에서 우붓의 토속 음식을 즐기며 발리 예술의 아름다움에 빠져들다 보면 흡사 천국의 숲을 걷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기 일쑤이다.

글·사진 | 고영훈
한국외국어대학교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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