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에 세상에서 가장 빠른 해적선‘블랙펄 (Black Pearl)’과 유령선 ‘플라잉 더치맨(Flying Dutchman)’ 이 등장 해 해상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스팩터클하게 전개된다. 그 중 실제 유럽의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플라잉 더치맨’은 1641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출항해 인도로 가려다가 남아공 희망봉 근처에서 침몰한 네덜란드 배의 영어식 이름이다.
이 배의 선장 ‘반 데르 데켄’은 희망봉 부근에서 폭풍우를 만났지만, 고집스럽게 ‘악마의 힘을 빌려서라도 지구 끝까지 항해하리라’라고 외치며 선원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희망봉을 돌아 항해를 계속하려 했고 배는 결국 폭풍우에 휘말려 가라앉았다, 그로부터 약 3백 년 동안 바다에서 이 배와 마주쳤다는 다른 선박들의 증언이 줄을 이었다.
여기서 나온 유령선에 관한 민간 전설은 독일 작가 ‘하이네’에 의해 문학작품으로 태어났고 곧바로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의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Der fliegende Holländer)’라는 이름으로 재탄생되었다.
오페라의 탄생 배경에는 작곡자의 끔찍한 항해 경험이 있었는데 라트비아(Latvia) 리가(Riga)에서 지휘자로 승승장구하며 활동했지만 오페라 ‘리엔찌(Rienzi)’의 제작을 위해 엄청난 빚을 지고 결국 채권자들을 피해 파리로 야반도주를 계획한다. 빚쟁이들에게 여권도 빼앗긴 상태로 밀항하며 엄청난 풍랑과 역방향으로 부는 해풍 때문에 8일 여정이 대폭 늘어나 북구 노르웨이까지 거쳐 간신히 3주 후에 중간 지점인 런던에 도착했다.
사실 라트비아에서 파리까지는 마차를 이용 한 편리한 육로가 있었는데도 배를 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바그너가 사랑하던 ‘로버’라는 견공(犬公) 때문이었다. 도저히 좁은 마차에 개까지 타고 갈 수는 없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데려가기는 해야겠고, 궁여지책으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방법이 위험천만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던 배편이었다. 바그너가 임신한 첫 번째 부인 ‘민나’를 사랑하긴 했겠지만 애완견 ‘로버’보다 조금만 더 그녀를 사랑했더라면 런던으로의 항해도 풍랑도 없었을 것이고 당연히 오페라의 탄생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에 네덜란드 항공 (KLM) 사의 마일리지 카드에 적인 이름을 보면 ‘Flying Dutchman’이라고 적혀있고 그 이름은 세계적으로 튤립 꽃, 오렌지색과 함께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단어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 그 이름의 유래를 따져보면 바닷속에 가라앉은 유령선의 이름이라서 어디다 가져다 붙이기엔 좀 난감한 점이 많은 이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네덜란드의 대표적 국가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데에는 예술의 힘이 막강하게 작용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것도 자국민이 아닌 독일 오페라 작곡가인 바그너에 의해 만들어진 유명세가 현재 네덜란드에는 소
중한 선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개인적으로 최근 필자의 독창회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12분이 넘는 ‘더치맨’의 아리아를 노래했는데 관객이 참고 들어줄까 하는 우려와는 달리 관객의 반응이 너무나 뜨거웠다. 무대를 넘어 관객석까지 폭풍과 뱃멀미를 느끼게 한 바그너의 음악을 우리도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특이한 경험인가? 200년 전 조선왕조 순조 때 태어난 지구 반대 작곡가의 작품이 오늘날 서울 한복판에서 대한민국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200년 후 지
구 반대편 유럽에서 울려 퍼질 감동적인 작품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신금호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반포아트홀 M 예술감독, 오페라M 대표
서울대 음악대학 /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