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타렐리 소예배당. 왼쪽 그림이 '성 마테오를 부르심'이다.
콘타렐리 소예배당. 왼쪽 그림이 '성 마테오를 부르심'이다.

 

[아츠앤컬쳐] 로마는 도시 전체가 열린 박물관이자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작품을 입장료도 없이, 또 줄도 서지 않고 그냥 손쉽게 들어가 감상할 수 있는 성당들도 적지 않다. 그중 하나가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지’(San Luigi dei Francesi), 즉, ‘프랑스인들의 성 루이 성당’이다. 이 성당은 주변의 나보나광장이나 판테온 같은 명소와 달리 겉모습이 수수해서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내부는 매우 화려하다. 이 성당은 로마에 거주하던 프랑스인들을 위해 세운 것으로, 유명한 건축가 자코모 델라 포르타가 설계하고 도메니코 폰타나가 1589년에 완공했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지 성당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지 성당

성당 내부 프랑스 추기경 콘타렐리의 소예배당에는 카라바조의 유명한 성화가 세 점 있다. 성 마테오의 생애 중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그린 <성 마테오를 부르심>, <성 마테오와 천사>, <성 마테오의 순교>가 그것인데, 그중에서 <성 마테오를 부르심>이 가장 유명하다. 한편 마테오(Matteo)는 이탈리아식 이름이고 우리나라 개신교와 가톨릭교회에서는 각각 ‘마태’, ‘마태오’라고 한다. 즉 신약성서 마태복음 또는 마태오복음의 저자이다.

카라바조는 1571년 밀라노에서 태어나 21세 때 로마로 왔다. 이곳에서 그는 정물화, 초상화 등으로 주목을 받다가 20대 후반부터는 감동적인 종교화를 그림으로써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미술사적으로 볼 때 르네상스시대가 끝나고 바로크 시대가 시작되기 직전인 매너리즘 시대 후반에 해당된다. 당시 로마에는 또 다른 북부이탈리아 화파 출신 안니발레 카라치도 크게 활동하고 있었다. 

카라치가 고전적인 언어로 이상을 추구했다면, 카라바조는 철저하게 현실을 추구했으며, 또 그것을 잔인하다고까지 말할 정도로 극적으로 표현했다. 즉 카라바조의 화풍은 부드러운 색상을 주로 즐겨 사용하던 당시의 화풍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특히 빛과 음영의 강렬한 대비를 많이 사용한 그의 화풍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사실적이면서도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 화풍은 17세기에 이탈리아뿐 아니라,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의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카라바조의 명화 '성 마테오를 부르심'
카라바조의 명화 '성 마테오를 부르심'

카라바조의 대표작 <성 마테오를 부르심>은 322cm x 340cm의 대작으로 1599년에 시작하여 1600년에 완성한 것이다. 이 그림은 마태복음 9장 9절 ‘나를 따르라. 그랬더니 일어서서 따라갔다’라는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을 담고 있다. 즉, 다른 세무직원과 함께 그날 거둔 세금을 계산하고 있는 세리 마테오를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와 함께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온 장면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맞는 인물들은 각자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 중에는 아예 무관심한 사람도 있다. 마테오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를 찾아왔느냐는 듯 왼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막 일어서려고 한다. 하지만 오른손은 아직도 조금 전에 세다가 만 동전에 가있다. (보기에 따라 이 그림에서 그가 마테오인지 애매모호하기도 하다. 왼쪽 끝에서 오로지 돈을 세는 일에만 몰두하는 젊은이가 마테오일 수도 있다.)

마테오를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손은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화 <천지창조>에서 아담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창조주의 손을 연상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세리 마테오가 새 사람으로 변화되기 직전의 순간은 화면의 오른쪽에서 비취어 들어오는 한줄기의 빛으로 더욱 극적으로 처리되어있다. 이 빛은 은총의 빛이며, 구원의 빛이리라.

그런데 탁자 주변의 인물들은 이 사건이 일어난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살던 로마제국시대의 복장이 아니라, 카라바조가 살던 시대의 복장을 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도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에게나 갑자기 찾아올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면 머리에 의미한 광채가 신성을 표현해주는 것 외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고 얼굴은 이곳을 찾아오느라 피곤한 듯하며 맨발이다. 베드로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지친 모습인데다가 맨발이다. 이것은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 살아가야하는 참모습일 것이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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