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오모의 거대한 쿠폴라
두오모의 거대한 쿠폴라

 

[아츠앤컬쳐] 르네상스의 요람 피렌체의 구심점은 두오모(Duomo)인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 즉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일반적으로 한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주교좌 대성당을 ‘(신의) 집’이란 뜻으로 간단히 ‘두오모’라고도 한다. 피렌체 대성당은 현재 로마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 밀라노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성당이지만 처음 세워졌을 때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3만 명의 신도를 수용할 수 있었다.

이 대성당에서 압권을 이루는 부분은 거대하면서도 우아한 쿠폴라이다. 이 쿠폴라는 최초의 르네상스 건축으로 평가된다. 이탈리아 용어 ‘쿠폴라’(cupola)는 영어권에서는 ‘돔’(dome)이라고 한다. 이 쿠폴라는 이중 벽, 즉 외벽과 내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사이는 빈 공간이다. 이 틈새에 설치된 좁은 계단을 타고 등산하듯 정상으로 올라가면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현기증 날 정도로 아찔하다. 정상에 오르면 피렌체 시가지가 360도 내려다보인다.

한 ‘세트’를 이루는 세례당(왼쪽), 두오모(가운데), 종탑(오른쪽)
한 ‘세트’를 이루는 세례당(왼쪽), 두오모(가운데), 종탑(오른쪽)

대성당 앞에는 팔각형의 세례당이, 옆에는 높은 종탑이 세워져 있는데, 세 개의 건축물은 세워진 시대와 기능이 서로 다르지만, 대리석으로 장식된 외부의 디자인과 재질과 색조가 모두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마치 하나의 보석 세트처럼 보인다.

대성당 건립 기원은 13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렌체가 경제적으로 부강해지자 피렌체를 상징할 만한 큰 성당이 필요했기 때문에 낡고 오래된 산타 레파라타 성당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로운 성당을 세우기로 했다. 이리하여 1296년에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가 설계 및 공사를 맡았고 그가 사망한 다음에는 다른 건축가들에 의해 공사가 진행되면서 성당 규모가 원래보다 더 확장되었다. 하지만 1347년에 토스카나 지방을 휩쓴 흑사병으로 경제가 위축되는 바람에 한동안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공사를 재개하여 1355년에 전면과 회중석벽 정도가 완성되었고 10년 후 피렌체의 경제가 다시 회복세로 돌아서자 공사는 본격적으로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주 큰 기술적 문제에 봉착했다. 지름이 44m에 달하고 바닥에서 높이 100m에 달하는 거대한 쿠폴라를 당시 기술로 어떻게 시공해야 할지 감감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1418년에 아이디어 공모전이 열렸다.

쿠폴라를 바라보는 브루넬레스키
쿠폴라를 바라보는 브루넬레스키

이 공모전에는 별의별 계획안이 다 제출되었는데 그중 가장 독창적이고 과감한 방식을 제시한 브루넬레스키의 계획안이 선정되었다. 그의 아이디어는 버팀목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벽돌을 자체의 무게와 벽돌들이 서로 수평으로 미는 힘이 균형을 이루게 하면서 비스듬히 쌓아 올리는 것이었다.

물론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마침내 1420년에 공사가 시작되었다. 브루넬레스키는 우산살 같은 거대한 8개의 석조뼈대와 그 사이에 16개의 보조 석재뼈대를 세우고 그 틈새에는 수백만 장의 벽돌을 한 장 한 장 조금의 오차도 없이 서로 엇갈리게 촘촘히 엮어 쌓으면서 쿠폴라가 무게를 스스로 지탱하면서 올라가도록 했다. 그리고 쿠폴라의 외벽과 내벽 사이를 비우고 이곳을 통로로 사용하도록 하여 쿠폴라 자체의 무게를 많이 줄였다. 특히 그는 그때그때 갖가지 기상천외한 건설장비와 도구를 발명하여 공사의 효율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공사가 마냥 순조롭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었다. 공사 중 시행착오를 겪을 때마다, 그를 시기하는 반대파들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았으며 또한 그들의 모함에 빠져 심지어 옥살이까지도 해야 했다. 그런 고초를 이겨내고 마침내 그는 착공 16년이 지난 1436년에 ‘꼭지’ 부분만 제외하고 별 탈 없이 모두 완공했다.

쿠폴라가 완성됨으로써 두오모는 착공된 지 140년이란 엄청난 세월이 지난 뒤에야 제 모습을 드러내었고 피렌체의 정치력과 경제력을 만방에 보여주던 상징적인 건축물이 되었다. 일생일대의 역작을 남긴 브루넬레스키는 1466년 69세의 나이에 눈을 감았다. 몇 년 후 그의 유해는 대성당 안 지하에 안장되었다. 이는 하늘이 보낸 천재 건축가에 대한 최고의 예우였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culturebox@naver.com

저작권자 © Arts & Cultur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