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el Duchamp

Marcel Duchamp, Nude (Study), Sad Young Man on a Train (Nu [esquisse], jeune homme triste dans un train), 1911–12, Guggenheim Collection – Venice Italy
Marcel Duchamp, Nude (Study), Sad Young Man on a Train (Nu [esquisse], jeune homme triste dans un train), 1911–12, Guggenheim Collection – Venice Italy

 

[아츠앤컬쳐] 지인들과 미술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물론, 그들은 피카소나 마그리트, 살바토르 달리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은 알고 있지만 이들의 본질적인 면을 이해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그래서 오늘날 시장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예술가 중 제프 쿤스(Jeff Koons)의 이해를 돕고자 예술의 개념을 뒤집어버린 1900년대의 위대한 예술가, 마르셀 뒤샹을 살펴본다. 그는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예술가로, 현재의 트렌드를 예측하고 창조한 사람이다. 그는 화가로서의 오랜 경력 동안 레디메이드(ready-made)와 아상블라주(assemblage)를 실현하며 개념적 미술의 시작을 알렸다.

1900년대 초까지 미술사는 묘사와 대표성을 띠고, 화가나 조각가는 무엇인가를 나타내고자 풍경을 묘사하고, 이야기나 에피소드를 설명하며, 사람들을 대표했다. 그러나 1900년대 초를 넘으며 세계는 심오한 변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20세기는 극적인 모순 속에서 시작되었고, 예술가, 작가, 지식인들은 여러 면에서 시기의 모든 변화들을 체감하고 있었다. 그들은 작품과 저술, 발명을 통해 무엇보다도 혼란스러운 사회 안팎의 의심과 희망, 고통과 열정의 목소리를 담고자 했다.

당시 가장 급진적인 운동은 다다이즘이었고, 마르셀 뒤샹은 미켈란젤로나 카라바죠처럼 완벽하게 혁신적이고 혁명적인 위대한 예술가였다. 뒤샹과 함께 현대미술은 더 이상 대표적이거나 묘사적이 아니라 개념적으로 바뀌고, 차츰 예술로 변모하는 철학적 행위로 바뀌었다.

Marcel Duchamp - Roue de bicyclette, 1913  -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Marcel Duchamp - Roue de bicyclette, 1913 -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마르셀 뒤샹은 1887년 7월 28일, 블레인빌 크레본에서 뚜렷한 예술적 성향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는 15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유명한 레디메이드의 실현에 앞서 오랫동안 당대의 모든 전위적 예술들을 경험했다. 수동적인 자연의 모방보다는 사상을 우선시하는 그의 끊임없는 예술적 탐구는 그로 하여금 혁신적인 행동을 하도록 이끌었다. 1913년 뒤샹은 평범한 받침대 위의 ‘자전거 바퀴’를 선보임으로 레디메이드의 시작(1915년 정식 용어로 지정됨)을 알림으로써 혁명적, 획기적인 의미를 띠고개념적 예술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

Marcel Duchamp- La Mariée mise à nu par ses célibataires, Even (The Large Glass) 1915–23- Philadelphia Museum of  Art- USA
Marcel Duchamp- La Mariée mise à nu par ses célibataires, Even (The Large Glass) 1915–23- Philadelphia Museum of Art- USA

 

레디메이드는 예술가가 일상의 물건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본래의 실용적인 기능을 박탈함으로써 그 기능적 역할로부터 격리됨을 의미한다. 오로지 예술가의 유일한 선택적 행위를 통해 물품의 본 기능은 해제되고 다시 새롭게 기능화 되었다. 이러한 방법은 새로운 개념 가운데 예술가가 더 이상 세계를 대표하지 않게 한다. 레디메이드는 작가가 선택한 일상적이고 평범한 공예품(옷걸이, 병마개, 소변기 등)이 예술 작품이 되어 박물관이나 갤러리 같이 전혀 다른 장소에 놓이게 했다. 이로서 예술가의 부가가치는 물품의 선택, 무작위적 식별, 나아가 물품의 획득 및 분리작업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방식은 천재이자 매우 지적인 예술가였던 뒤샹을 피카소도 감히 도달하지 못한 곳으로 이끌며, 예술적 사고를 완전히 뒤집는 결정을 내리게 했다.

Marcel Duchamp – Nude Descending a Staricase – N. 2 – 1912-Philadelphia Museum of Art
Marcel Duchamp – Nude Descending a Staricase – N. 2 – 1912-Philadelphia Museum of Art

 

뒤샹은 예술사에서 현대적 사고의 아버지이자, 예술이란 예술가가 간주하는 것일 뿐 그 무엇도 아니라고 믿은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는 이전 시대의 예술을 백지 상태로 돌리며, 레디메이드를 통해 예술의 정체성을 엉망으로 만드는 예술적 언어와 형식에 대한 성찰을 촉구했다. 또한 새롭고 급진적인 예술의 원칙을 승인하며, 예술의 즐거움은 더 이상 감각적 특권이 아니라 지성적 특권임을 주장함으로, 예술은 점차 개념적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1913년, 뒤샹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된 ‘자전거 바퀴’는 작은 부엌 의자에 고정된 흔한 바퀴였다. 이 두 가지 물체는 전혀 공통점이 없었으며, 이러한 배합은 대중들의 상상력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되어 혹자들은 지능에 대한 모욕으로 여겼다. 그러나 ‘자전거 바퀴’는 사실상 레디메이드의 전형적 예로서, 물체에 대한 작가의 개입을 나타낸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제스처를 통해 단순히 선택한 물체를 본연의 맥락에서 이탈시키는 것으로 예술 영역에서의 완성된 물체를 취하게 된다. 뒤샹의 1914년의 작품 ‘병마개(Scolabottiglie)’와 1915년의 ‘부러진 팔(Broken arm)’ 그리고 1917년의 ‘샘(Fontana)’ 또한 이러한 방식이었다.

Marcel Duchamp-  Fountain- 1917 - Lost Work
Marcel Duchamp- Fountain- 1917 - Lost Work

 

‘샘’은 뒤샹의 가장 유명한 레디메이드로, 1917년 뉴욕의 한 위생 물품 가게에서 구입한 단순한 흰색 세라믹 소변기였다. 처음엔 단지 물건을 뒤집어 서명한 후 독립예술가협회에 전시할 의도였지만 당시 협회의 이사였던 그는 익명으로 제출하기로 결심했다. 따라서 R. Mutt라고 서명한 소변기를 심사위원들에게 보냈지만 그들은 당황한 나머지 작품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 후 뒤샹은 익명의 예술가를 변호하며 이렇게 기록했다. “Mutt씨가 자신의 손으로 ‘샘’을 만들었건 아니건 중요하지 않다. 그는 일상 생활의 평범한 물건을 선택했고, 이를 새로운 이름과 시각 아래 본래의 사용 의미가 사라지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이 물건은 새로운 관점을 창조한 것이다.”

​Marcel Duchamp- L.H.O.O.Q. 1919- Private collection - New York​
​Marcel Duchamp- L.H.O.O.Q. 1919- Private collection - New York​

 

아마도 모든 사람들은 뒤샹이 동일한 방식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을 그린 것을 알 것이다. 도발을 넘어 매우 복잡하고 심오한 예술가였던 뒤샹은 1919년 ‘L.H.O.O.Q.’라는 약어로 알려진 ‘콧수염난 죠콘다(Gioconda coi baffi)’에서 음소와 단어를 조합하는 것을 즐겼다. 죠콘다의 복제품에 수염과 콧수염을 그린 뒤샹은 걸작의 훼손을 원하지는 않았다. 이는 단지 조롱이었고, 대중들에 의해 은연 중에 행해지는 작품 숭배에 맞서기 위한, 예술의 신성에 대한 일종의 모독적 시위였다.

Marcel Duchamp Five-Way Portrait of Marcel Duchamp (Portrait multiple de Marcel Duchamp), Broadway Photo Shop, New York City, 21 June 1917- National Portrait Gallery- Washington- USA​
Marcel Duchamp Five-Way Portrait of Marcel Duchamp (Portrait multiple de Marcel Duchamp), Broadway Photo Shop, New York City, 21 June 1917- National Portrait Gallery- Washington- USA​

 

이 작품 이후 미술사에서 신성한 것은 사라진다. 예술가는 철학자가 되어 더이상 세상을 대표하지 않는 대신 그것을 사고하고 건설한다. 또한 파괴하고, 구성하며, 해석하고, 자신의 역할을 바꾸는 가운데 예술 또한 변모한다. 뒤샹에게 있어, 예술가의 작업과 운영 능력은 단지 부분적 가치를 지닌다. 그는 예술 작품이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행위라 믿었다. 공중 화장실의 소변기가 박물관에서 그 자체가 아닌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처럼. 뒤샹 이후 오늘날까지 예술은 더 이상 미적 즐거움이 아니며 더 이상 아름답지 않지만, 대신 지적 즐거움이 되고 개념적 사고가 된다.

 

번역 | 길한나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글 | 로베르토 파시 Basera Roberto Pasi
Journalist, Doctorate Degree University of Siena(Literature, Philosophy, History of Art with honors), Study at Freiheit Univerisität Berlin, Facilitator at Osho Resort, Poona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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