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미국 월드트레이드센터를 공격한 9·11사태의 주범 테러리스트 빈 라덴. 미국은 그의 도피를 도왔던 아프가니스탄의 수니파 탈레반 정부를 2001년 11월 전쟁으로 축출하고 새로운 민주 정부 수립을 도왔다. 하지만 20년간의 내전 끝에 탈레반은 트럼프 때부터 시작한 미국과의 협상과 바이든 정부의 동의 하에 미군 철수를 끌어냈고 이후 3개월 만에 전광석화와 같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다시 점령하면서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해외로 망명했다. 그러자 미국 시민의 철수에도 문제가 생기면서 5천 명의 미군이 투입되는 황당한 상황까지 연출되고 제2의 베트남이 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가 넘치고 있다.
지난 20년간 1조 달러를 투입했지만 미국에 이익이 없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 지지를 얻었고 실제로 철수를 결정하면서, 미국은 아프간 군대가 최소 6개월에서 1년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오판했다. 바로 지난 7월 7일에도 아프가니스탄과 탈레반의 고위급 정부 관계자들이 시아파 접경국 이란의 중재로 수도 테헤란에서 평화회담을 가졌지만 이미 승기를 잡은 탈레반의 일방적 주장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이제 수니파 전쟁 난민들이 국경을 넘어와 시아파 국가를 어지럽힐 수 있다는 두려움에 직면한 상황이다.
과거 탈레반 정부하의 아프가니스탄은 극단적인 이슬람주의로 이란, 인도, 파키스탄 등 주변 국가들과 많은 문제를 일으키며 유적지를 파괴하고, 눈을 포함 전신을 뒤덮는 부르카로 대변되는, 여성 인권을 억압하는 인권 블랙홀 국가로 악명을 떨쳤다. 그렇다고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후 탈레반을 몰아낸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달랐느냐면 그것도 아니었나보다. 무능했고 그 많은 지원을 받았음에도 지금의 아수라장을 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공관 철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탈레반이 IS(이슬라믹 스테이트, 지하드 무장단체)를 소탕할 것으로 기대하는 듯하다. 이건 뭐 21세기의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해야 할까. 테러리스트 잡는 테러리스트라는 이상한 상황이다. 우리 눈에는 늘 비슷하게 보이지만 중동지역의 정치적 상황은 이 정도로 꼬이고 꼬여 버린 것이다. 옛 러시아 연방이었던 중앙아시아 쪽으로 눈독을 들이지 않는 탈레반이 호시탐탐 중앙아시아까지 이슬람의 영향력을 넓히려는 IS보다는 차라리 나은 선택지라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뒷배를 봐주는 현재의 정부는 아무래도 껄끄러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러시아의 입장에서 당연한 선택지로도 보인다. 지구상에 진정 정의로운 평화는 없다. 현실은 무조건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6·25 한국전쟁에서 살아남은 우리가 기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중동 전쟁의 역사는 성경을 통해서 그 뿌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데, 먼 옛날이야기 같지만 블레셋(현재 팔레스타인)을 초토화 시킨 천하장사 삼손의 이야기, 블레셋의 거인 장군 골리앗을 돌팔매 하나로 제압한 다윗의 이야기 그리고 본격적 으로 중동지역을 지배하던 이집트, 바빌론, 아시리아, 페르시아 치하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내용들을 살펴보면 이집트 파라오에게서 이스라엘 민족을 탈출시킨 모세 이야기는 여러 작곡가들이 작품으로 제작했다. BC 722년 북이스라엘 왕국을 무너뜨린 아시리아 이야기(이스라엘의 사마리아 지역이 함락되면서 주민들을 아시리아로 이주시키고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키는 방식을 취하며 아시리아와 이스라엘의 혼합종교를 의도했다). BC 586년 남유다왕국을 멸망시킨 바빌론의 왕 느부갓네살(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던 도중 번개를 맞고 실성했다 죄를 뉘우치고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의 이야기는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로 제작되었다.
영화 <300(2007)>에서 그리스 침공을 진행했던 페르시아의 왕 아하수에르스(Xerxes 1세, 성경 상 페르시아로 끌려간 유대인 출신의 왕비였던 에스더가 왕을 설득해 이스라엘 민족의 학살령을 거두도록 하는 이야기에 등장)는 성경과는 전혀 다른 스토리지만 헨델의 오페라 <Xerxes(1738)>로 제작되었다. 이들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작품 중 하나가 느부갓네살의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든 <나부코>(1842년 3월 9일, 라스칼라 초연)일 것이다.
오페라의 내용은 남유다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바빌론의 왕 나부코가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러 쳐들어온다. 문제는 자신의 딸들(페네나, 아비가일레)이 유대인 남자(이즈마엘레)를 좋아해서 생긴 삼각관계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하늘에서 내린 벼락을 맞고 정신을 잃는데, 원래 왕위를 넘겨주려던 페네나가 아닌 아비가일레가 아버지를 구금해 왕권을 빼앗고 여왕으로 등극한다.
사실 아비게일레는 권력욕뿐 아니라 자신이 어머니가 노예였다는 사실에 혈통적으로 왕위를 이어받을 우선순위를 가진 자매 페네나에 대한 질투심으로 그녀를 죽이려 한다. 마침 형장으로 끌려가는 딸의 모습을 보고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나부코는 유대인의 신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 왕권을 되찾는 동시에 유대인들을 풀어주고 바빌론의 신상을 파괴하라고 명한다. 아비게일레는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페네나에게 용서를 구하고는 숨을 거둔다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다.
<나부코> 작곡을 수락하기 전 베르디는 아내와 두 딸을 잃고 상심에 빠져 오페라는 물론 작곡에 손도 대고 있지 않았다. 베르디는 라 스칼라로부터 <나부코>의 작곡 제안을 받으며 극장장으로부터 전달받은 솔레라의 대본(이미 한차례 작곡가 오토 니콜라이에게 거절당한 대본이었다)을 별로 내키지 않은 마음에 책상에 아무렇게나 던졌는데 대본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펼쳐진 페이지에서 ‘Va pensiero, sull' ali dorate근심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날아 가버려라’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이 한 구절 때문에 베르디는대본을 읽었고 오페라 탄생에 지대한 공을 세운 금빛 날개 구절은 특별히 합창으로 탄생했는데, 바로 ‘히브리 노예의 합창’이라는 별칭으로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오페라 합창의 최고 명작이다. ‘히브리 노예의 합창’은 타민족에게 정복당해 노예가 된 유대인들의 모습이 식민시대 이 땅의 국민을 떠올리게 하여 한동안 대한민국 광복절 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기도 했다.
2021년 광복절 직전 국립오페라에서 오페라 <나부코>를 올리며 음악계에서 호평을 받았고 10월에는 생상스의 <삼손과 데릴라(1877)>를 제작한다고 한다. 올해는 중동을 배경으로 한 전설을 담은 오페라들이 올라간다니 흥미를 가지고 지켜봐야 할 듯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지만 일반 관객들에게도 오페라 소식이 많이 전해지면 좋겠다. 명색이 “국립” 오페라단의 정기 공연인데 말이다.
글 | 신금호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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