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현실과 꿈 그리고 판타지를 오가는 이야기들은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 새롭지 않다. 현실을 초월하는 세계를 향한 인간의 동경은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고, 급기야 새로운 것이 새롭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물론 이런 도전들 덕에 인간은 하늘을 날게 되었고 컴퓨터도 만들고 그 컴퓨터를 손안에 들어오는 크기로 발전시켰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의 현실엔 가상세계를 즐기는 걸 넘어 그 안으로 직접 들어가 참여하는 세상이 열리고 있다. 그 세계에서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얼마든지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바로 나를 대신하는 아바타를 만들어 활동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 매트릭스 같은 암울한 미래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일단 현재 한정된 재화와 공간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최근 들어 메타버스(Metaverse)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리더니 필자도 메타버스의 주제 모임에 초대되어 이런저런 정보와 이야기를 듣고, 실제 메타버스 플랫폼에 들어가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하고 공연장을 만들어 노래 연습도 해봤더니,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들어와 노래를 듣고 박수도 치고 인사까지 나누는 경험을 했다. 간단하게는 가상공간에서의 작은 음악회나 영상을 업로드해서 유튜브처럼 함께 감상하기도 가능하다. 당장 교육 사업에 적용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아직은 생소한 용어지만 예술작품에 NFT(non-fungible token)라는 블록체인 개념이 들어와 작품의 저작권을 기업의 주식처럼 쪼개서 팔고 사는 일도 메타버스 갤러리에서 가능할 거고, 홍보가 필요한 제품들을 모아 놓은 상점에서 원하는 물건을 결제하면 하루 만에 집에서 받아보는 활동이 현실 세계와 동일하게 이뤄지면서 물류가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쇼핑의 시간과 공간 제약이 없어질 것이라고 한다.

메타버스에서는 일단 아바타로 활동하니 익명성이 보장되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동시에 많은 사람이 모여 대화할 수 있어 토론과 회의가 가능해 전화나 온라인 회의보다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교육과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눈독을 들일 만 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세운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가 새로운 사업으로 기획하던 가상공간(Virtual Reality)이 당시의 느린 데이터 통신과 컴퓨터 그래픽 처리 능력의 한계로 무산되었는데, 현재 메타버스라는 이름으로 확장된 세계관을 덧입고 우리 눈앞에 바싹 다가온 것이다.

이후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다시 돌아가면서 시기상조로 무산된 계획의 결과물을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로 만들었고, 음악의 디지털 파일 처리 방식으로 시작한 아이팟에서 결국 아이폰도 만들어졌다.

지금에 와서 19세기를 보면 까마득한 옛날처럼 보이지만 유럽의 박물관에 가서 그 시대를 보면 현대의 기술력으로 보아도 대단한 기계 장치들이 만들어지던 시대다. 당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소설로 많이 만들어졌고 또 그를 바탕으로 무대예술로도 만들어졌다.

오페라 무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대표적인 오페라가 <호프만의 이야기(1881)>인데 세 개의 메인에피소드가 있고 그 앞뒤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이어 붙인 옴니버스 형식의 오페라로, 주인공 호프만이 모든 에피소드의 주인공으로 다양한 세계를 오가는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등장하는 인물들도 매우 그로테스크한 캐릭터들이다. 호프만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은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하는 프리마돈나 스텔라뿐이라 하면서도 과거 지나온 여인들과의 이야기를 자랑한다. 첫눈에 반했던 여인은 요즘 공상과학 애니메이션에 등장할만한 완벽한 인간형 AI 로봇 올림피아(호프만은 인형도 사람처럼 보이게 되는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춤을 추다가 그만 깨져서 올림피아의 실체를 보게 된다. 호프만의 안경에 지금의 AR 기술이 들어있었던 셈이다), 인간의 영혼을 홀려그림자를 훔치는 사이렌 같은 창녀 줄리에타, 성악가지만 노래를 부를수록 건강이 악화되어 이제는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여인 안토니아, 그들과의 사랑 이야기가 줄줄이 나온다.

호프만이 사랑했던 네 명의 여인은 보통 무대에서는 한 소프라노가 1인 다역으로 맡는 경우가 많다. 한 사람에게 여러 가지 인격이 존재함을 표현하는 멋진 설정이다. 또한 악마적인 바리톤 캐릭터가 각각의 막에 등장하는데 이 역시 네 가지 역할을 한 사람의 성악가가 공연하곤 한다.

독일의 후기 낭만주의 작가이자 작곡가, 대법원 판사였던 에른스트 테오도어 빌헬름 호프만(Ernst Theodor Wilhelm Hoffmann, 1776~1822)은 공상적이고 괴기한 작품을 많이 썼는데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1892)> 역시 호프만의 작품을 기초로 하고 있다.

<호프만의 이야기>는 이 호프만의 작품 세 가지 <고문관 크레스펠 Der Rat Krespel>, <잠의 요정 Der Sandmann>, <잃어버린 거울 속 이미지 Das verlorene Spiegelbild>를 기초로 프랑스로 귀화한 독일 작곡가 오펜바흐가 음악을, 쥘 바르비에와 미셀 카레가 프랑스어 대본을 작성하였는데, 그렇게도 오페라를 기다리던 오펜바흐가 초연 4개월 전 세상을 떠나고 친구였던 작곡가 에른스트 기로가 미완성된 오케스트라 악보를 완성해 1881년 2월 10일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에서 첫 공연을 올렸다. 한 오페라 안에서 배경이 되는 도시가 뉘른베르크, 로마, 뮌헨, 베네치아로 유럽의 4개 주요 도시를 넘나드는 큰 스케일의 작품이다.

19세기 유럽에서 미래를 지향하며 시대를 앞서갔던 사람들의 상상력 유전자가 지금 현실을 넘어선 메타버스라는 스토리가 있는 가상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필자도 곧 메타버스 상에서 오페라와 새로운 이야기를 결합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한정된 공간에서 무대공연으로만 감상하던 오페라가 과연 시공간을 초월해 전 세계에서 시청 가능한 가상세계로 진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과 기대감이 나의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휘젓고 있다.

신금호
신금호

글 | 신금호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www.mcultur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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