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와 포토그래퍼는
숙명적인 사이

에디터들 Giovanna Battaglia & Anna Dello Russo
에디터들 Giovanna Battaglia & Anna Dello Russo

 

[아츠앤컬쳐] 패션 에디터, 패션 기자, 패션 저널리스트, 패션 리포터. 이들 패션 프레스들은 일 년 중 반은 마감이라는 상황에서 살아야 하고 그 나머지 반은 마감에 맞는 재료들을 구하러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들이다.

특히 패션지의 에디터들은 마감과 동시에 다음 달에 어떤 기사나 화보를 실을지를 기획하고 촬영 컨셉을 설정한다. 그리고 난 다음엔 그걸 실행하기 위한 섭외가 시작되고 촬영을 위한 스태프들을 구성하며 모델을 캐스팅한다. 촬영한 의상과 액세서리, 소품을 구하러 동분서주하고 틈틈이 각종 패션 행사나 이벤트, 패션쇼 등에도 얼굴을 내밀어야 하고 인터뷰도 해야 한다. 그리고 촬영이 끝난 후엔 제품들을 반납하고 모든 진행이 끝나면 그때부터 원고를 써 내려간다. 물론 사진과 원고의 프린트가 나오면 인쇄상태며 원고의 교정도 에디터들의 몫이다.

이 사이클은 거의 매달 반복된다. 그러니 그들의 전화는 언제나 통화 중이며 언제나 외국행 비행기를 탈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보그의 에디터들_샤넬 파리
보그의 에디터들_샤넬 파리

서로 다른 패션지에서 일하는 에디터들은 비슷한 일을 하는 동료이면서도 항상 경쟁의 상대이기도 하다. 로버트 알트만의 영화 ‘프레타 포르테’는 인기 있는 포토그래퍼나 모델을 차지하기 위해 에디터들이 좌충우돌하는 내용, 한정된 사진가와 모델 중에서 서로 실력 있는 사람들을 캐스팅하기 위해 벌이는 패션피플들의 세계를 소재로 한 영화이다.

경쟁 매체에 대한 견제가 미묘한 갈등으로 나타나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해외 컬렉션에서 이런 일들이 가끔 일어나곤 하는데, 그녀들이 패션쇼장에 도착했을 때는 서로 경쟁 매체의 에디터가 어느 줄에 앉는지를 체크하는 것이다. 만일 경쟁 매체 에디터가 자신의 자리보다 앞줄에 있다면 이건 명백한 자존심의 대결로 이어진다. 자리 배치에 불만을 품은 에디터가 항의라도 할라치면 한국에서 파견된 홍보 담당은 얼굴이 파랗게 질리기도 하고 가끔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사진가인 내게 에디터라는 존재는 패션 화보를 의뢰하는 클라이언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동료 같기도 하고, 때로는 자상한 누나처럼 늘 챙겨 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파리의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 도중 일어난 해프닝 하나! 평소에도 파리는 물가가 비싸고 택시가 귀한데 컬렉션 기간 중의 교통은 더욱 끔찍하다.

패션쇼가 끝나고 한꺼번에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이 쏟아져 나오는데 여기서 택시를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렌터카로 약 일주일 동안 이동하곤 하는데 형편상 에디터들 서너 명이 한 차를 빌려 비용(하루 이용료가 200~300유로 정도)을 분담하게 된다. 이렇게 에디터들이 렌트한 차를 포토그래퍼인 나도 함께 타고 이동하는데 쇼 도중 그녀들과 연락이 두절된 것이 아닌가!

핸드폰도 없이 내가 어디로 움직여야 할 지 모르던 터라 그날 오후는 파리의 전형적인 관광객이 되기로 마음먹고 평소 못 가본 개선문도 올라가 보고, 에펠탑 주위를 서성이며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놀이동산에서 보호자를 잃어버린 아이의 심정이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후 내내 걱정했다며 호텔에서야 다시 합류하게 된 마담 휘가로 코리아의 편집장 김은정 씨와 보그 코리아의 편집장 이명희 씨는 우울한 나를 위해 맛난 저녁을 사주겠다고 한다.

글 | 케이티 김
사진작가, 패션계의 힘을 모아 어려운 이들을 돕자는 Fashion 4 Development의 아트 디렉터로 뉴욕에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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