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인류역사상 최초의 ‘로봇’이 등장한 곳은 어디일까? 다름 아닌 체코의 수도 프라하이다. 그럼 언제 등장했을까? 정답은 지금부터 100여 년 전이다. 단, 요즘 여러 나라에서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그런 첨단 로봇이 그때 등장한 것이 아니라 ‘로봇’(robot)이란 용어가 그때 처음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 단어는 원래 영어가 아닌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로봇’은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펙(1890~1938)이 1920년 11월에 발표한 공상과학 희곡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 희곡의 제목은 <R.U.R.>인데 체코어 Rossumovi univerzální roboti의 약자로 영어로는 Rossum's Universal Robots이다. 즉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들>이다. 이 희곡은 1921년 1월 25일에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으니, 꼭 101년 전에 역사상 처음으로 ‘로봇’이 무대에 등장했던 셈이다.
카렐 차펙은 화가이자 작가이며 언론인이었던 그의 형 요세프 차펙과 함께 종종 작업했는데 ‘로봇’이란 말은 바로 요세프 차펙이 고안한 것이다. 그는 없는 말을 그냥 아무렇게나 새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강제로) 일을 해주는 자’, ‘(강제로 하는) 일’을 뜻하는 옛 체코어 ‘로보타(robota)’를 차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카렐 차펙의 <R.U.R.>에 등장하는 로봇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계적 특성이 보이는 로봇이 아니라, 인간과 꼭 닮아서 겉으로는 전혀 구분이 안 되는 인조인간이다. 그런데 이 로봇들은 나중에 인간에게 반항하고 마침내는 오히려 인간을 지배한다.
프라하에서 인조인간에 관련된 이야기는 이미 ‘로봇’이 탄생하기 약 440년 전 유대인 지역에 있었다. 이 인조인간의 이름은 ‘골렘’인데, 유대인 지역에는 그 이름을 딴 ‘우 골레마’라는 레스토랑도 있다. 한편 유대인 지역의 핵심부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본보기로 완전히 새롭게 개발되었기 때문에 음침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옛 모습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여섯 개의 유대교 회당, 유대인 공동묘지, 유대지구 구청건물 정도만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데 유대교 회당 중에서 구신(舊新) 유대교 회당은 독일 나치의 강점기간을 제외하고 지금까지도 사용되는 가장 오래된 유대교 성전으로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고딕양식 건축물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이 지역에서 골렘이 탄생한 것은 1580년경의 일이다. 당시 박해받던 유대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유대교 율법박사 랍비 뢰브는 매일 간절히 기도를 했다. 그러다가 하루는 기도하던 중에 골렘을 만들라는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 골렘이란 히브리어로 ‘아직 형태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데 보통은 흙으로 빚은 영혼과 생명이 없는 사람 형태를 말한다.
랍비 뢰브는 유대교의 비법에 따라 블타바 강변의 흙으로 골렘을 만들고는 신비한 종교의식에 따라 주문을 하고 히브리어로 ‘진실’이란 뜻의 글자 에멧( אתמ , Emet)을 골렘의 이마에 붙였다. 그리고는 코에다가 정기를 불어넣자 골렘이 생명을 얻어 일어섰다. 기골이 장대한 골렘의 임무는 이곳의 유대인들을 보호하는 일이라 유대인들은 이제는 안심이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골렘은 날로 점점 포악해져 유대인까지 죽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랍비는 사람들에게 골렘을 파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골렘의 이마에 붙은 글자에서 에(א, E)를 떼어냈다. 그러자 골렘은 그만 생명을 잃고 흙의 형상으로 돌아갔다. 히브리어로 멧(תמ , Met)은 ‘죽음’이란 뜻이다. 생명이 없는 골렘은 구신 유대교 회당의 다락방에 숨겨졌고 다락에는 어느 누구도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골렘 이야기는 후세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 했다. 그러고 보면 매리 셸리가 1818년에 출간한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골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톨킨이 1954년에 처음 출간한 <반지의 제왕>에서 등장하는 ‘골룸’(Gollum)이란 이름은 다름 아닌 ‘골렘’을 변형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고 보면 카렐 차펙도 골렘 이야기로부터 영감을 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culturebox@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