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변의 새벽. 게지라 섬에 카이로 타워가 솟아있다.
나일강변의 새벽. 게지라 섬에 카이로 타워가 솟아있다.

 

[아츠앤컬쳐] 이집트라고 하면 피라미드가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 수도 카이로의 외곽도시 기자에는 세 개의 피라미드가 사막에 세워져 있는데 그중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대표적인 것은 파라오 쿠푸의 피라미드이다. 이 피라미드는 2.5톤 직육면체의 돌덩어리를 51도의 경사각으로 정교하게 230만 개나 쌓아 올린 높이 139미터(원래는 146미터) 밑변 230미터의 고대 최대 건축물이다. 기원전 2589년에서 기원전 2566년에 걸쳐 세워졌으니 지금부터 약 4,600년 전의 일이다.

그렇다면 이집트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카이로 타워이다. 한강에 여의도가 있다면 나일강에는 게지라 섬이 있는데 이 섬 남쪽 지역에 카이로 타워가 세워져 있다. 카이로 타워는 지금부터 꼭 60년 전에 세워졌다. 따라서 연륜으로 비교하면 피라미드와는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높이로 비교한다면 피라미드보다 43미터가 더 높은 187미터로 북아프리카에서는 가장 높은 구조물이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힐브로우 타워가 1971년에 세워지기 전까지 10년 동안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최고 높이를 자랑했다.

 

카이로 타워 정상부의 레스토랑
카이로 타워 정상부의 레스토랑

 

카이로 타워는 모두 56층으로 전망대와 송신탑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 전망대 아래 카페-레스토랑은 아주 느린 속도로 360도 회전하는데 시간은 70분이 걸린다. 그러니까 메인 코스를 마치고 디저트를 맛볼 때쯤 되면 완전히 한 바퀴 돈 것이 될 것이다.

카이로 타워는 멀리서 바라보면 나일강에서 솟아나와 파피루스 줄기처럼 날렵하게 하늘로 치솟아오른 기둥 같다. 외장에 사용된 석재는 아스완의 화강암, 즉 고대 이집트인들이 파라오의 신전을 지을 때 쓰던 돌이다.

표면을 보면 여러 개의 줄기가 서로 얽혀 나선형으로 올라가며 다이아몬드 형태의 기하학적인 다이아몬드 형태의 기하학적인 이슬람 문양을 이루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날렵하면서도 간결한 인상을 준다. 줄기의 끝부분은 밖으로 살짝 벌어져 막 피어나려는 연꽃잎을 암시하는 듯하다. 고대 이집트의 유물을 보면 상부 이집트와 하부 이집트의 상징은 각각 연꽃과 파피루스였으며 통일된 이집트 왕국의 상징은 연꽃과 파피루스의 줄기가 서로 얽힌 다발 형태로 나타난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카이로 타워의 디자인 의도가 쉽게 이해된다.

 

현대 이집트를 상징하는 카이로 타워
현대 이집트를 상징하는 카이로 타워

 

카이로 타워의 건립 기원은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와 같은 높은 구조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건축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또 정치적으로도 과감한 도전이 필요했다. 이집트 정부는 카이로에서 고층빌딩을 설계해본 경험이 있는 유일한 건축가이자 구조엔지니어인 나움 셰비브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공사는 1954년에 시작되었으나 수에즈 운하 전쟁 중에는 중단되었다가 1956년에 재개되어 1959년에 종결되었다.

공식 오프닝은 나세르 대통령(1918~1970)이 참석한 가운데 1961년 4월 11일에 있었다. 범아랍주의(Pan-Arabism)의 기수였던 나세르 대통령은 사회주의, 세속주의, 민족주의 성향의 정책으로 1950~60년대에 걸쳐 아랍 세계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었던 통치자로 현대 이집트의 파라오와 같은 인물이었다.

당시 소련에 우호적이던 이집트는 미국과 좀 불편한 관계에 있었는데, 미국 정부는 나세르의 오른팔을 통해 나세르에게 거금을 몰래 건네주었다고 한다. 이집트 정부는 재정적으로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나세르는 5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집트가 200여 년밖에 안 되는 역사를 가진 미국의 입김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것을 만방에 천명하려는 듯, 이 돈으로 현대 이집트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구조물을 세우겠다고 공포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카이로 타워를 디자인할 때 미국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꼿꼿하게 세운 형태로 했다고 말한다.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는 것은 욕의 표시이다. 이 에피소드가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카이로 타워가 이집트 사람들의 자존심의 상징이란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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