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

 

[아츠앤컬쳐] 20세기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 그는 43세가 되던 해인 1930년에 프랑스 국적을 받지만 원래는 스위스의 작은 산골 도시 라 쇼드퐁(La Chaux-de-Fonds) 출신으로 본명은 샤를-에두아르 자느레-그리(Charles-Édouard Jeanneret-Gris)였다. 그는 24세 때인 1911년 5월, 친구와 함께 스케치북과 카메라가 든 배낭을 메고 헝가리, 발칸반도를 거쳐 이스탄불과 아테네로 향했고 그 다음에는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향했다.

이 여행은 유럽에서 18세기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지식인들의 낭만적 그랜드 투어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겠는데, 그에게는 고대 지중해 세계를 둘러보며 건축의 본질을 탐구하는 여행이었다. 다섯 달 동안 지속된 이 여행은 그가 위대한 건축가로 성장해 나가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그가 쓴 여행기는 <동방여행(Voyage d’Orient)>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1914년에 출간될 예정이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출간이 무산된 후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1966년에야 출간되었다.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

<동방여행>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2개의 주요 도시는 이스탄불과 아테네이다. 이스탄불에서 르 코르뷔지에는 하기아 소피아 성당과 이슬람 사원들이 있는 도시풍경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하기아 소피아 성당(터키어 명칭은 ‘아야 소피아’)은 537년에 세워져 지금도 굳건하게 서 있는데 다른 유명 건축물들과는 달리 파사드(정면)가 강조되어 있지 않고 전체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처럼 보인다. 내부공간에 들어서면 강렬한 분위기에 휩싸이게 되는데, 특히 네 개의 아치 구조 위에 올려진 55미터 높
이의 중앙 돔 하단부에 있는 40개의 창문을 통해 어두운 내부 공간으로 들어오는 빛은 환상적면서 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스탄불을 떠나 아테네에 도착한 르 코르뷔지에는 대지를 뚫고 솟아오른 아크로폴리스를 보고 넋을 잃을 정도로 강력한 인상을 받았다. 아크로폴리스는 비정형적으로 위치한 계단과 경사로를 따라 오르게 되는데 정상부에 세워진 희게 빛나는 파르테논 신전은 시야에서 일직선상 위가 아니라 오른쪽에 비스듬히 배치되어 있고 왼쪽의 에렉테온과 시각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주변 환경에 녹아든 듯 지형에 맞게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원전 432년에 세워진 이 신전은 간결한 도리스 양식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착시교정 수법이 교묘하게 사용되어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파르테논 신전이 지닌 기하학적 완결함과 비례에 완전히 매료되어 아테네에 체류하는 3주일 동안 매일 이곳을 찾아와 여러 각도에서 또 빛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는 신전의 모습을 스케치했다. 그에게 아름다움이란 부피도, 넓이도, 높이도, 거기 들인 비용도, 조명 효과도, 그 무엇도 아닌, 조화에 있을 뿐이었다.

프랑스 롱샹의 노트르담 뒤 오 성당
프랑스 롱샹의 노트르담 뒤 오 성당

르 코르뷔지에의 생애 후기의 대표작은 1954년에 완공한 롱샹 성당(정식이름은 노트르담 뒤 오 Notre-Dame-du-Haut). 이 성당은 그가 추구했던 표준적이고 규격화된 합리주의 건축과는 완전히 다른 조각적 형태의 건축이다. 아크로폴리스처럼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이 성당은 파르테논 신전으로 진입할 때처럼, 직선으로 진입하지 않고 먼저 성당 건물을 돌면서 외관을 인지하게 된다. 외관은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성당 내부로 들어서면 다양한 크기의 채색된 창들과 벽체와 곡면 지붕 사이 가는 틈새를 통해 빛이 들어오는데 마치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 안으로 스며드는 빛처럼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많은 작품을 남긴 르 코르뷔지에는 만년에 프랑스 남부 지중해변의 마을에 손수 지은 소박한 통나무집에서 작업하며 여름을 보냈다. 그러던 1965년 8월 27일, 바다에 들어갔다가 심장마비로 68세의 일기로 눈을 감고 말았다. 젊은 시절에 동경했던 지중해 세계로 향한 영원한 여행이었던 것일까?

 

정태남
정태남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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