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도나우 강변에 위치한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약 60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며 인구 45만 명 정도의 작은 고도(古都)이고, 도시의 핵심에 해당하는 구시가지는 모두 두 발로 걸어 다녀도 될 정도로 규모가 작다.
그런데 도나우강에는 이런 고풍스러운 도시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현대식 다리 하나가 눈길을 끈다. 이 다리는 주변의 다른 다리들과는 달리 마치 발을 도나우강에 담그기가 싫은 듯 다리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물에 박은 교각이라곤 하나도 없어서 어떻게 보면 허공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다리는 비대칭형의 사장교(斜張橋 cable-stayed bridge)이다. 즉, 강 건너편 남쪽 지역에 두 개의 높은 철강 기둥으로 이루어진 사다리꼴의 주탑 하나만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데, 주탑의 상부에서 늘어뜨린 몇 가닥의 철강 케이블에 차량과 사람들이 지나는 상판이 매달려 있을 뿐이다.
이 다리가 지닌 또 다른 매력이라면 주탑 위 85미터 높이에 설치된 비행접시 모양의 레스토랑인데 마치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UFO가 이륙하려는 듯한 모습이다. 그래서 이 다리는 ‘UFO 다리’라고도 불린다. 레스토랑의 이름도 ‘UFO’이다. 이 레스토랑과 그 위의 전망대에서는 브라티슬라바 시가지 전경과 도나우강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이곳에 올라가려면 주탑의 동쪽 기둥 안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한다. 한편 서쪽 기둥에는 430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비상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다리는 사람들을 그냥 통행만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머물게도 하는 것이다.
과감한 구조와 날렵한 디자인이 일체가 된 이 다리는 브라티슬라바의 구시가지가 지닌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깨고 미래지향적인 도시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듯하다. 그런데 이 다리가 세워진 것은 최근이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통합되어 있던 체코슬로바키아 시대였다. 공산주의 시대에 체코슬로바키아의 건축가와 구조 엔지니어에 의해 설계되고 체코슬로바키아의 건설사에 의해 1967년에 착공, 5년 만인 1972년에 개통되었던 것이다. 당시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천편일률적이고 구태의연한 형태의 디자인이 주축을 이루었지만 이곳에서는 혁신적인 디자인의 다리가 세워졌던 것이다.
이 다리의 공식 명칭은 ‘슬로바키아 민족 항쟁의 다리’라는 뜻의 약자로 ‘에스엔페(SNP) 다리’이다. 즉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이던 1944년 슬로바키아를 점거한 나치 독일에 항거하여 일어난 대대적인 민중봉기를 기념한 것이다.
이 다리가 세워짐으로써 도나우강 남쪽 인구가 밀집된 지역과 구시가지가 있는 지역은 직접 연결되어 강남과 강북지역이 하나의 경제권으로 더욱더 통합되게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리 건설을 위해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던 유서 깊은 구시가지의 도시 성벽의 일부가 완전히 매몰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 다리와 연결되는 도로를 만들기 위해 구시가지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는데, 특히 유서 깊은 유대인 지구는 아예 완전히 철거되고 말았다.
또한 이 다리와 연결되는 도로가 브라티슬라바의 종교적인 구심점인 성 마르틴 대성당의 정면에서 너무 가깝기 때문에, 화물을 적재한 트럭이 지나갈 때면 도로에서 발생하는 진동이 그대로 이 수백 년 된 성당의 기초 부분에 영향을 끼친다. 이런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어쨌든 이 다리는 브라티슬라바를 대표하는 명소 중 하나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특히 UFO 덕분에.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한강에 놓인 그 많은 다리들 중에 하나만이라도 독특한 구조와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 만한 것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강의 아름다움은 강에 세워지는 다리의 아름다움에 의해 크게 좌우되니 말이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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