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지난 12월에 방문했던 스플리트는 겨울이지만 지중해성기후로 그다지 춥지 않았다. 해마다 6월이면 스플리트를 중심으로 달마티아 지방엔 노란 아스팔라토스 꽃이 만발한다고 하는데, 아스팔라토스를 스팔라토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팔라토스 열매는 우리가 마시는 루이보스 차의 재료이고 스플리트라는 지명도 스팔라토스 꽃 이름에서 유래한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출신성분이 좋지 않은 직업군인이었으나 황제의 경호관이 되면서 승승장구하여 황제로 추대되었다. 혼란의 로마제국을 절묘한 사두정치체제로 안정시켰으나, 반면에 여느 황제보다도 더욱 심하게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다. 이후 건강이 나빠져서 로마 황제 최초로 스스로 퇴임하고 고향인 스플리트로 돌아가 재위 시절에 만든 왕궁에서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사두정치 체제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황제직을 사퇴하자 친구였던 서방 황제 막시미아누스도 동반 사직을 했다. 부황제들이 황제가 되고 당시 부황제의 아들로 아버지를 이어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밑에 있었던 장군이었다.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달리 기독교를 공인했지만 기독교를 믿지는 않았다고 한다. 태양신 미트라를 섬기는 신자였기 때문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왕궁은 295년에 짓기 시작해서 305년에 완공되었고 디오클레티아누스는 311년에 생을 마감했기에 왕궁생활은 6년여에 불과했다. 왕궁은 현재 일부만이 남아있지만 당시 세워진 궁전은 동서 215m 남북으로 181m 최고 높이가 26m로 웅장한 스케일을 자랑한다. 왕궁의 바다를 면한 쪽으로 황제가 살고 안쪽으로는 군인과 신하들이 살았다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왕궁이 가치 있는 이유는, 이곳이 고대 후기에 건설되어 중세 초기에는 활발한 중세 도시였으며 오늘날까지도 대도시의 중심지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왕궁은 최고의 중세 도시 유적이 되었으며, 원래의 고대 스타일에서 건축학적으로 일부 변형이 되었으나 현재까지도 보존되고 있고 건축된 많은 건물들이 문화유산으로서의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스플리트의 디오클레티아누스 왕궁과 역사 건축물들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현재 왕궁 안쪽에는 200여 채의 건물이 있고 3천여 명의 주민이 기념품 가게나 카페,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글 | 전동수 발행인
음악평론가, 코러스나우 예술감독, ITALIAN FILM & ART FESTIVAL 고문을 맡고 있고 서울그랜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총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