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노르웨이에서는 일 년 중 여름 몇 달 동안은 낮이 길어서 한밤중에도 하늘이 밝다. 그런 반면에 일 년 중 겨울 몇 달 동안은 하루에 빛이 불과 몇 시간밖에 없기 때문에 우울함으로 가득한 어둠의 세계가 펼쳐진다.
노르웨이의 위상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이끌어 올린 인물 세 명을 꼽는다면 음악가 에드바르드 그리그, 극작가 헨릭 입센,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이다. 뭉크(1863~1944)의 대표작은 단연 <절규>이다. 그의 작품이라면 불안, 고독, 삶과 죽음을 담은 그림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의 작품세계는 그가 겪었던 어두운 삶과 관련되어 있다. 즉, 1868년 그가 5살 때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1877년 그가 14살 때는 누나 소피(Sophie)마저 결핵으로 사망했다. 또 여동생 하나는 정신병을 앓았고, 남동생은 결혼한 뒤 몇 달 만에 죽었다. 그 자신도 병약했기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할 것으로 믿었다.
이처럼 뭉크라면 어두웠던 그의 삶이 투영된 작품들을 먼저 연상하게 되지만 이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들도 있다. 예로 <다리 위의 소녀들>은 밝은 여름 하늘 아래 다리 위에 선 세 명의 소녀가 잔잔한 물에 비친 나무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담고있는데, 뭉크 특유의 어두움과 불안함은 화면 어느 구석에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밝음과 평온함이 느껴진다. 항상 죽음의 그림자에 짓눌려있던 뭉크는 어떻게 해서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
이 그림의 배경이 된 곳은 상상의 장소가 아니라 오스고르스트란(Åsgårdstrand)이라고 하는 마을의 선착장이다. 이 마을은 인구 3,000명 정도의 바닷가 마을로 오슬로에서 남쪽으로 대략 100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데 웬만한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고, 또 여행을 어지간히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도 아주 생소한 곳이다.
이 마을은 원래 가난한 어부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또 목재를 수출하던 작은 항구였다. 북유럽은 겨울 몇 달 동안은 하루에 빛이 불과 몇 시간밖에 없지만 5월이 되면 낮의 길이가 현격하게 길어지기 시작하는데, 이곳은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데다가 해변이라서 다른 곳보다 빛이 더 풍부하다. 이리하여 1880년대에 접어들면서 노르웨이 화가들이 하나둘씩 이곳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뭉크가 이곳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것은 1880년대 중엽 20대 초반의 청년이었을 때였다. 그는 북유럽의 자연에 둘러싸인 한적한 이곳에서 마음속 깊이 드리워져 있던 번뇌의 그림자를 떨쳐낼 수 있었다. 그 후 여름이 되면 이곳을 찾아왔는데 올 때마다 집을 빌렸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고 그도 친절하고 순박한 이곳 사람들을 무척 좋아했다.
그러다가 국제적으로 지명도가 높아지고 수입이 많아지자 35세가 되던 1898년에는 아예 집을 한 채 구매했다. 그러니까 그는 파리와 베를린에서 떠돌이로 살다가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진 이 집은 가난한 어부가 살던 아주 소박한 오두막집이었다.
이 집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정원과 주변의 꽃과 나무, 확 트인 바다, 반짝이는 모래밭, 바다 위로 떠오르는 달,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도 이제 그의 소유가 되었다. 그는 여름철을 이곳에서 보내고 나면 주로 외국에서 활동했는데, 외국에 있을 때는 이곳 마을 사람들을 그리워하여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들에게 돈과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뭉크는 예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삶의 기쁨을 오스고르스트란에서 맛보았으며 이것이 그대로 그의 작품 속에 투영되었던 것이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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