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블타바(Vltava)강은 비셰흐라트(Vyšehrad) 언덕을 스친 다음 프라하 시내 쪽으로 유유히 흘러간다. 베드르지흐 스메타나(1824~1884)가 작곡한 연작교향시 《나의 조국》(Má Vlast)은 모두 여섯 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첫 번째 곡이 <비셰흐라트>, 두 번째 곡이 <블타바>이다. 비셰흐라트 언덕은 10세기 후반 프르제미슬왕조의 탄생 전설이 깃든 곳인데 이 왕조는 체코역사의 문을 연 순수 체코민족의 왕조였다. 이 왕조가 끝난 후 체코는 외세의 지배를 받으면서 격동의 역사를 맞게 된다.
체코를 대표하는 음악가 스메타나는 체코민족의 혼을 음악에 불어넣으면서 체코음악을 좀 더 근대적으로 정착시키는 일에 앞장섰다. 그는 중부 유럽음악의 주류에 뿌리를 두고 체코의 역사, 영웅담, 전설, 민속 등과 같은 요소를 첨가시키거나 체코의 풍경을 표제로 하는 등 체코 음악의 새로운 길을 모색한 체코국민주의 음악의 선구자였던 것이다. 그런데 <비셰흐라트>와 <블타바>를 작곡할 당시 그는 음악가에게는치명적인 재앙인 청력 이상으로 음을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가 찬양한 블타바 강의 흐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비셰흐라트는 ‘높은(vyše) 성(城 hrad)’이란 뜻이다. 이 언덕 위에 조성된 묘지에는 정치, 예술, 문학,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체코를 빛낸 약 600명의 인물들이 묻혀 있는데 그 중에는 음악가 스메타나와 드보르작을 비롯, 화가 알폰스 무하, 문인 카렐 차펙과 얀 네루다 등의 묘소도 눈에 띈다.
그들이 활동했던 프라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프라하 도시 역사를 살펴보면, 이곳이 아름다운 도시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4세기 후반 카를 4세(체코식으로는 ‘카렐 4세’)가 통치할 때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대대적으로 도시계획을 단행하면서, 성 비투스 대성당, 프라하 성, 카를 다리를 비롯 프라하의 주요한 건축물들 상당수를 착공하거나 증축했다. 즉 오늘날 프라하에서 손꼽는 주요 건축물들 상당수는 그가 통치하던 시대에 세워졌던 것이다.
한편 프라하 역사의 시작은 카를 4세 시대 몇 세기 이전 프르제미슬 왕조의 탄생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왕조의 탄생은 전설과 역사가 혼재된 안개 속에 휩싸여있다. ‘체코’라는 국명은 전설상의 인물 체흐(Czech)로부터 유래한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체흐의 아들 크로크는 9세기 중반에 부족국가의 기초를 다지고 비셰흐라트 언덕에 성곽을 쌓았다고 한다.
그는 딸이 셋 있었는데 그중 총명하고 지혜로운 셋째 딸 리부셰에게 통치술을 가르치고는 권력을 물려주었다. 어느 날 그녀는 환상 속에서 블타바 강 건너편 멀리 보이는 언덕에서 크게 번영하는 도읍지의 모습을 봤다. 또 환상 속에서 결혼할 남자도 봤다. 그 남자는 멀리 떨어진 마을에 살고 있으니 데려오라고 했다. 리부셰는 이 남자와 결혼하게 되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프르제미슬이다. 이리하여 프르제미슬 왕조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남편을 등에 없고 실권을 장악한 리부셰는 도읍지를 비셰흐라트에서 강 건너 편 멀리 언덕 위로 옮기고 그곳을 ‘프라하’라고 불렀다. 그 지점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보는 프라하 성(城)과 성 비투스 대성당이 세워진 곳이다.
세월이 흐른 다음 12세기 중반부터 비셰흐라트 언덕은 서서히 잊혀졌다. 그러다가 카를 4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대관식 행차를 바로 이 언덕에서부터 시작하고 또 이곳을 요새화하고는 프라하 시가지와 연결했다. 이리하여 비셰흐라트 언덕이 지닌 역사성과 상징성은 다시 부각되었던 것이다.
스메타나는 리부셰와 비셰흐라트 언덕에 얽힌 전설을 소재로 체코어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그것이 바로 《리부셰》이다. 매년 5월 12일 스메타나의 기일에 맞추어 개최되는 <프라하 봄 국제음악제>는 오페라《 리부셰》 서곡과 함께 막이 오르고 이어서 《 나의 조국》이 연주된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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