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지구상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나라중 하나로 손꼽히는 스위스. 그렇다면 스위스에서 최고의 절경으로 손꼽히는 곳은 어디일까? 다름 아닌 루체른과 그 주변이다. 전통적인 게르만 도시의 특징을 간직한 루체른은 로이스(Reuss)강 하구와 피어발트슈태터제(Vierwaldstättersee)라고 하는 큰 호숫가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 호수는 보통 ‘루체른 호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호수 주변 경치는 스위스 중부의 우아한 평지로부터 알프스 산맥으로 이어지는 급한 경사와 바위벽으로 이루어진 절벽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루체른 남쪽에는 있는 해발 2,120미터 필라투스(Pilatus)산과 호수 건너편 동쪽에 있는 해발 1,800미터의 리기(Rigi) 산은 많은 사람들을 유혹한다. 리기 산에 오르면 루체른 호수와 베기스(Weggis)를 비롯한 호수 주변의 아름다운 마을들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베버, 멘델스존, 빅토르 위고 등 19세기의 음악가나 문인들을 비롯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도 이 산에 올라서서 루체른호수 주변의 절경에 감탄했다고 한다. 당시 많은 관광객들이 이 산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에 1871년에는 유럽 최초의 등산철도가
개통되었다.
음악적인 측면으로 본다면 루체른은 바그너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고 베토벤과는 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다. 바그너는 루체른 교외 트립셴(Triebschen)에서 1866년에서 1872년 기간 동안 여러 번 체류하면서 창작에 몰두했는데 그의 걸작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신들의 황혼>은 바로 루체른 체류기간 중에 완성된 것이다. 바그너는 전처인 민나가 1866년에 죽자 4년 후에 지휘자 한스 폰 뷜로와 이혼한 리스트의 딸 코지마와 이곳에서 1870년 8월 25일에 정식으로 결혼하여 루체른 호수가 보이는 별장에서 꿈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렇다면 베토벤은? 루체른 호수 위에 달이 뜨면 그의 <피아노 소나타 Op.27 no.2>의 1악장이 연상된다. 그는 1802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4개의 피아노 소나타 Op.22, Op.26, Op.27(no.1과 no.2), Op.28을 출판했는데, Op.22과 Op.28은 전통적인 구성으로 되어있는 반면, 나머지 소나타들은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한 작품들이다. 그 중에서 특히 Op.27 no.2의 1악장은 피아노의 음향을 완전히 새롭게 생각하게 하는 이정표적인 작품이다. 베토벤은 31세이던 1801년에 이 곡을 작곡하여 그가 연모하던 귀족집안 소녀 줄리엣타 구잇차르디(Giulietta Guicciardi)에게 바쳤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귀족집안의 청년과 결혼하여 이탈리아의 나폴리로 이주하고 말았다.
<피아노 소나타 Op.27 no.2>의 1악장을 들어보면, 음이 길게 이어지다가 사라질 때쯤 해서 다시 이어지는 저음부의 선율은 엄숙함 속에 무엇이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우수(憂愁)를 담고 있는 듯하다. 또 리듬이 거의 바뀌지 않고 달빛처럼 영롱하면서 무한하게 고요히 퍼져나가는 아르페지오는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조용한 탄식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그 우수의 소리와 탄식소리는 승화된 영혼의 소리처럼 들린다.
독일 베를린 출신의 낭만시인이며 음악평론가이자 언론인이었던 렐슈탑(1779~1860)은 베토벤이 세상을 떠난 후에 이 불멸의 명곡을 ‘루체른 호수 위에 비치는 달빛을 받은 작은 배’를 연상한다고 해서 <Mondschein-Sonate>, 즉 <월광 소나타>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작곡가인 베토벤이 제목을 붙인 것이 아닌 것이다. 베토벤은 바그너와 달리 생전에 루체른에 와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만약 이곳에 왔더라면 그도 과연 이런 제목을 붙였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루체른의 절경에는 완전히 매료되었겠지만.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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