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Budapest)는 원래 하나의 도시가 아니었다. 이 도시는 도나우강 서쪽의 부다(Buda)와 동쪽 페스트(Pest), 그리고 부다의 북쪽 오부다(Óbuda)가 통합되어 이루어진 도시로, 헝가리 사람들은 ‘부더페슈트’라고 발음한다.
부다페스트는 예로부터 ‘도나우강의 진주’로 불릴 정도로 매력적인 도시다. 부다페스트 시가지를 관통하며 흐르는 도나우강 풍경의 구심점은 우아하고 운치 있는 세체니 다리다. 이 다리는 포물선으로 늘어진 케이블에다가 사람과 자동차가 지나다니는교상(deck)을 매다는 방식의 현수교라서 현지에서는 ‘쇠사슬 다리’라고도 한다. 길이 375미터의 이 다리를 지탱하는 두 개의 주탑은 고대 로마의 개선문 같은 형태라서 기념비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다. 이 다리는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가장 긴 다리 중의하나이자 또 초현대식 다리 중의 하나로 꼽혔으며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구조물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이 다리 건설의 주역은 헝가리의 귀족 명문가 출신 정치가 세체니(I. Széchenyi, 1791~1860)였다. 그는 도나우강 경제권과 부다와 페스트 지역의 경제와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이 다리 건설 계획을 과감히 추진하면서 당시 산업혁명으로 앞서가던 영국의 건설기술을 도입했다. 설계는 런던 근교에 현수교를 설계해 본 경험이 있는 영국의 명망 있는 토목엔지니어 윌리엄 클라크, 공사현장감독은 공교롭게도 그와 성이 같은 아담 클라크(Aadam Clark)가 맡았다. 이리하여 세체니 다리는 1842년에 착공, 마침내 1849년 12월 20일에 완공되었다. 이 다리가 개통되자 부다와 페스트가 통합하게 되는 미래가 성큼 다가왔고 마침내 1873년에는 ‘부다페스트’라는 이름의 도시가 탄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세체니 다리의 역사는 마치 헝가리의 역사처럼 수난으로 점철되어 있다. 1848년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에 항거하는 혁명이 일어나자 오스트리아 군대는 완공을 앞둔 이 다리를 폭파할 계획을 세웠다. 아담 클라크는 이 정보를 입수하고는 폭탄이 터져도 다리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미리 조치했다. 이처럼 그의 의지와 기지 덕택에 세체니 다리는 다행히도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체니 다리 서쪽 입구에 조성된 로터리 광장은 그를 기념하여 ‘아담 클라크 광장’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이 다리는 개통 100주년을 몇 년 앞두고 최악의 수난을 당했다. 즉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군이 소련군의 진격을 차단하기 위해 도나우강 위의 놓인 다리란 다리는 모조리 폭파했던 것이다. 따라서 부다페스트는 물리적으로 다시 부다와 페스트로 갈라지고 말았다. 이 다리는 전쟁이 끝난 1949년, 즉 개통 100주년이 되는 해에 복구되었다. 하지만 그때 헝가리는 공산주의 시대라는 또 다른 암울한 역사의 길로 접어든 다음이었다. 이를 말해주듯 공산정권하에서 아담 클라크 광장 한가운데의 화
단은 공산당을 상징하는 커다란 붉은 별로 장식되었다.
개통 140주년이 되던 1989년은 세계역사의 흐름이 완전히 바뀌는 엄청난 격변의 해였다. 당시 헝가리는 공산국가치고는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를 누리던 나라였기 때문에 공산 치하의 동독 시민들은 헝가리를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로 여겼다. 그런데 그해 8월, 헝가리에 여행 왔던 동독 시민들이 자유를 찾아 오스트리아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탈출행렬이 계속 이어지자 헝가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국경을 아예 개방해 버렸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동유럽 국가의 공산정권들이 하나둘씩 차례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또 부다페스트에서는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세체니 다리에 운집하여 자유를 높이 외치며 공산주의 시대를 도나우강물에 완전히 씻겨 떠내려가도록 했다. 이에 아담 클라크 광장의 붉은 별 장식도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해 11월에는 동서냉전 시대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도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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