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피아니스트가 공부를 위해 산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다.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쿨에서 18살로 역대 최연소 우승해 세상을 놀라게 한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인터뷰에서 “난 산에 들어가 피아노만 치고 싶은 사람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새로운 곡을 찾아 계속 공부하면서 세상의 모든 레퍼토리를 정복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전곡,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전곡, 쇼스타코비치의 프렐류드와 푸가 전곡 연주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멋진 일이다. 그가 이 레파토리로 독주회를 연다고 할 때 쇼스타코비치 빼고 다른 연주회는 모두 가서 들어보고 싶다. 임윤찬의 예고된 국내 연주회는 현재 모두 매진되어 듣고 싶어도 들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아마도 임윤찬은 모차르트, 베토벤, 쇼스타코비치를 연습하러 산에 가려는 것 같다. 하지만 그에게 더 이상 추가적 수련 기간은 필요없다. 이미 세계적 콩쿨을 통해 세계 최정상급 피아니스트임을 공증받았기 때문이다.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K-클래식의 가능성을 확인해 준 것으로도 큰 의미를 남겼다. 그는 외국 언론과의 한 인터뷰에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 한국인들은 음악을 되게 좋아하고 또 잘하는 민족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만 공부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그를 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에게 최초로 피아노를 가르친 사람은 경기도 시흥시의 한 동네 학원 선생님이다. 이 첫 선생님의 역할과 공로에 대해서도 좀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 이후 임윤찬을 클라이번 콩쿨 우승자로 만든 데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손민수 교수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현재 임윤찬이 말하고 행동하고 음악을 하는 것은 거의 손민수 교수의 복사판이다.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손민수 교수를 가리켜 “선생님은 제게 종교나 다름이 없어요”라고 확인시켜주었다.
손민수 교수는 과장이 없고 절제된 연주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손 교수는 임윤찬에게 많은 독서를 하도록 유도하고 레슨 시간에 피아노를 기교적으로 가르치기보다는 작곡가들과 책들과 인생에 대해 더 열정적으로 설명한다고 한다. 손 교수는 이런 레슨 방법을 자신이 공부했던 미국 보스턴 뉴잉글랜드음악원 러셀 셔먼 교수에게서 배웠다. 그런데 이런 러셀 셔먼식 피아노 교수법은 모든 피아노 교수들이 따라할 수 없는 것이고 모든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방식도 아니다. 러셀 셔먼은 너무나 특별한 피아노 교수이자 인문학자이고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계보를 이어갈 수 있는 제자도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손 교수는 반 클라이번 콩쿨 훨씬 이전인 지난해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임윤찬은) 연주하려고 태어난 사람 같다”며 “무대를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자유로워진다는 게 어떤 건지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레슨 할 때는 내성적이라 걱정이 되는데, 무대에서 갑자기 뭔가 터져 나올 때는 거의 배신감을 느낄 정도다”라고 임윤찬의 가능성을 예고했다.
임윤찬이 만약 산을 가야 한다면 피아노 연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작곡을 위해 가야 할 것 같다. 임윤찬은 작곡을 해 보았는데 자신의 길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지 않다. 임윤찬은 아직 20살도 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들이 즐겨듣는 브람스 교향곡, 말러 교향곡은 모두 20살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말러는 교향곡 1번을 28살인 1889년 완성했다. 초연은 그 다음해였다. 브람스는 말러보다 시기적으로는 앞섰지만 나이로는 훨씬 늦은 43세인 1876년에야 완성했다.
지금 우리 시대가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등을 능가하는 클래식 작곡가를 가지고 있지 못한 이유는 작곡가들이 이들 위대한 작곡가들보다 건반 음악 연주에 능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임윤찬은 연주력에 있어서 위대한 선배 작곡가들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 따라서 그는 위대한 작곡가로 성장할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임윤찬에게는 많은 시간이 있다. 그는 현재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제3번 연주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그가 리스트와 라흐마니노프에 필적하는 작품을 쓸 수 있는 진정한 K-클래식 리더로 성장해 나가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글 | 강일모
경영학 박사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역임
차의과학대학교 상임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