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요즘 오후가 되면 덕수궁에 들러가려고 긴 줄이 늘어서는 흔치 않은 도시 모습이 펼쳐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화가 장욱진의 대규모 회고전을 열어 유작 총 1,000여 작품 중 270여 작품을 전시 중인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자체 소장품은 물론 양주 장욱진미술관, 리움 등 국내 주요 미술관들이 뜻을 모은 것 외에 개인 소장자들도 적극 참여해 대규모 기획전이 가능했다. 여기에 BTS 리더인 RM도 소장품 6점을 내놓아 가세했다. RM측은 어느 작품이 자신의 소장품들인가를 밝히고 있지 않아 궁금증을 더한다.
장욱진은 김환기, 이우환, 박수근, 이중섭, 박서보 등과 함께 가장 인기 작가 중 한 명이다. 1986년작 51.5×23cm 크기 유화 ‘무제’는 2022년 10월 25일 서울옥션에서 1억 원에, 1987년작 35×35cm 크기 유화 ‘무제’는 2022년 9월 28일 K옥션에서 8천만 원에, 1986년작 52×24cm 크기 유화 ‘산수도’는 1억2천만 원에 각각 낙찰되었다. 22.7×15.8cm 크기를 평균적 1호로 말하는 미술계에서 엽서 1장 1호 크기에 2천만 원이 넘는 작지만 매운 가격들이다.
장욱진은 김환기, 이우환, 박서보 등이 1백호가 넘는 대작들이 많은 것에 비해 10호 넘는 작품이 드물다. 왜 작은 거인 장욱진은 작게 그렸을까. 장욱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분명히 찾아야 할 것이다. 덕수궁 장욱진 회고전에 가면 전시장을 꾸미고 있는 작은 그림 작가의 힘 찬 문귀들이 눈에 띈다. 우문에 대한 답은 여기서 일부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 남는 시간은 술로 휴식하면서, 내가 오로지 확실하게 알고 믿는 것은 이것뿐이다.”
“붓에 뭔가를 이루었다는 욕심이 들어갈 때 그림은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때면 무심코 자연을 직시하곤 한다. 요즈음도 그림이 막히면 나는 까치 소리며 감나무 잎사귀들이 몸 부비는 소리들을 그저 듣는다. 그것만큼 사람 마음을 비우게 해주는 것도 드물다.”
우리나라 인사동, 경복궁, 강남 등 화랑가의 전시회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화가들의 커다란 화폭에서 우리는 종종 공허함을 본다. 장욱진처럼 작은 작품을 통해 미가 응축된 아름다움의 정수를 추구하는 작가는 우리 화단에서 앞으로도 쉽게 발견하기 힘들 것이 분명하다.
장욱진은 1954년부터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 중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자 1960년 사직했다. 장욱진은 교수직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고 그의 삶의 모든 에너지를 10호도 안 되는 작은 그림들에 쏟아 부은 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도록이나 신문에 나온 사진으로는 감상이 완전 불가능하다. 전시관 직원들이 신경 쓸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그림 가까이 바짝 접근해야 비로소 볼 수 있을 정도다. 왜냐하면 그의 그림에는 마크 로스코와 같이 여러 겹의 짙고 엷은 유화 물감이 겹쳐 있는 데다 아주 가느다랗게 수없이 반복된 스크레치가 중요한 작품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반복된 스크레치는 빛을 산란시키며 그림을 더욱 가라앉게 만든다.
장욱진과 김환기는 각자의 방법으로 모두 아름다운 남색을 찾아낸 화가들이다. 환기가 찾아낸 남색은 ‘환기 Blue’라는 고유명사까지 얻었다. 장욱진은 욱진 블루로 ‘까치’라는 40×31 cm의 작은 화폭에 남색 까치 단 한 마리를 그려 넣었다. 다행히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어서 비교적 쉽게 자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번 덕수궁 장욱진 회고전은 큰 것에 익숙해지고 있는 한국의 미술 애호가들에게 작은 그림의 진정한 깊이와 매력을 전달해 준다.
덕수궁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초대형 기획전 장욱진 회고전은 내년 2014년 2월 11일까지 계속된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에, 그리고 ‘아름다움(美)’이라는 자체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번 기회에 꼭 덕수궁 장욱진 회고전에 들러 자신의 ‘미의 정의’와 장욱진의 그것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글 | 강일모
경영학 박사 / 에코 에너지 대표 / 차의과학대학교 법인이사 / 제2대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 전 예술의전당 이사 / 전 문화일보 정보통신팀장 문화부장 / ‘나라119.net’, ‘서울 살아야 할 이유, 옮겨야 할 이유’, ‘메타버스를 타다’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