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떠도는 숙명의 노래

 

[아츠앤컬쳐]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가수 마리자(Marisa)의 ‘나의 파두’를 접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파두’가 범상치 않은 음악임을 금세 눈치챘을 것이다. 그녀의 놀라운 가창력 이상으로 ‘파두’의 음률에 실린 사우다드가 그지없이 강렬하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의 전통음악인 ‘파두’의 이러한 느낌은 바다를 업으로 살아갔던 무수한 사람들의 눈물 젖은 염원에서 기인한다.

이베리아반도 서쪽에 자리한 포르투갈은 15-17세기 대항해시대의 탐험으로 인해 강대국의 반열에 올랐다. 남아메리카를 위시해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에 제국을 건설한 포르투갈은 ‘온난한 항구(Portus Cale)’라는 어원이 말해 주듯 바다를 거슬러 그 세력을 확장했다.

포르투갈의 황금기는 사실상 거친 대서양의 신항로 개척과 함께 시작되었지만, 이는 곧 장거리 항해를 떠나는 남자들과 그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여자들의 숱한 이별을 의미하기도 했다. 끝도 모를 바다 한 가운데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과, 광폭한 바다 끝의 난파선을 눈물로 좇는 마음, ‘파두’란 이 두 마음 사이의 한(恨)을 달래려는 노랫가락이었다.

‘파두’는 크게 리스본 파두와 코임브라 파두로 나뉜다. 리스본 항구 지대와 코임브라 대학촌에서 부흥한 이 두 ‘파두’는 각각의 지역적 특성을 수반하며 발전했고, 전자는 여성, 후자는 남성 파디스타(fadista, 파두가수)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사실상 ‘파두’의 근본 정서는 리스본 파두와 맥을 같이 하기에 여성 파디스타들은 통상적으로 상복과 같은 검은 드레스를 착용한다.

비통한 심정을 극적으로 표출하는 여성 가수들의 슬픈 연가(戀歌)는 포르투갈 기타(guitarra portuguesa)에 실려 항구의 밤을 처량하게 적신다. 이때 미묘하면서도 자유로운 당김음과 꾸밈음, 가수들의 즉흥적인 꺾임새는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호드리게스(Amalia Rodrigues)를 떠오르게 한다. ‘파두’의 지역성을 허물고, 당당하게 예술로 승화시킨 그녀가 곧 리스본 파두의 전형이자 실체이기 때문이다. ‘파두’에 깃든 그녀의 존재감은 ‘갈매기(Gaivota)’나 ‘검은 돛배(Barco Negro)’, ‘두 개의 빛(Duas Luazes)’, ‘눈물(Lagrima)’, ‘신이여, 용서를(Que Deus Me Perdoe)’, ‘저주(Maldição)’ 등 수많은 고전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현재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계보를 이을 만한 여성 가수로는 마리자를 꼽을 수 있는데, 그녀의 노래가 ‘파두’의 정체성을 잘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가창력과 표현력, 역동성과 섬세함, 품위와 개성을 두루 갖춘 그녀의 노래는 마치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독특한 실루엣의 의복처럼 마음에 꼭 들어맞는다.

스페인의 거장 카를로스 사우라(Carlos Saura) 감독은 2007년의 영화 <파두(Fados)>에 마리자의 노래인 ‘나의 파두’를 수록했다. 이는 마리자의 3집 앨범에 실린 파울루 드 까르발류(Paulo de Carvalho)의 곡으로, 영화 <파두>에서는 스페인의 유명 플라멩코 가수인 미구엘 포베다(Miguel Poveda)와의 듀엣으로 소개되었다. 두 사람의 슬프고도 애절하며 의연하기까지 노래는 마치 바다를 사이에 두고 그리움을 숙명처럼 거두는 ‘파두’의 본질을 나타내듯 했다.

사우라 감독은 자신의 영화인 <탕고(Tango)>나 <플라멩코(Flamenco)>, <이베리아(Iberia)>처럼 <파두>에도 춤과 음악에 깃든 민족성과 예술사를 투영했다. 특히 <파두>에는 마리아 세베라(Maria Severa), 알프레도 마르세네이루(Alfredo Marceneiro),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와 같은 대가들의 오마주를 남긴 것으로 유명한데, 이와 더불어 마리자, 카마네(Camané), 릴라 다운스(Lila Downs), 루라(Lura), 카에타누 벨로주(Caetano Veloso), 치코 부아르케(Chico Buarque) 등 환상적인 보컬들의 노래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만족시켰다. 어쩌면 감독은 그리움의 무게를 주체할 수 없는 마음들이 한껏 눈물을 쏟아내도록 휘몰아치며 울부짖는 바다를 선사했는지도 모른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저작권자 © Arts & Cultur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