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온유한 저항의 숨결

 

[아츠앤컬쳐] 90년대 초에 젊음을 불태웠던 세대에게 ‘람바다(Lambada)’는 매우 특별한 노래였다. 그룹 카오마(Kaoma)의 데뷔 앨범 <월드비트(Worldbeat)>에 실린 이 곡은 당시 수많은 젊은이를 라틴 댄스에 눈뜨게 했다. 앨범은 카리브해의 여러 람바다와 레게, 살사 등 이국적인 비트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중 가장 흥겨운 ‘람바다’는 댄스파티를 주름잡는 최고의 히트곡이었다. 그러나 이 흥겨운 곡이 뜻밖에 이별의 가사를 지니며, 원곡 또한 브라질이 아닌 안데스산맥에 자리한 볼리비아의 노래임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람바다’의 원곡은 ‘눈물을 흘리며 떠났네(Llorando se fue)’이다.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와 더불어 안데스 지역을 대표하는 이 곡은 그저 서글픈 이별노래로 치부되기에는 남다른 역사와 의미를 지녔다. 이는 대부분의 안데스 고원지대의 음악들이 잉카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인디오의 고난의 역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신대륙 발견으로 인한 잉카 제국의 멸망은 사실상 원주민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토속 가무를 즐기던 원주민들이 서구음악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슬프지만 필연적인 과정은 “어딘지 모를 서글픈 음악”, “고원을 지나는 바람에 비유할 처연한 음악”이라 불리는 안데스 음악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했다. 실로 볼리비아를 비롯해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칠레 등 안데스 주요 국가들은 잉카의 유산에 서구 음악을 더해 독특한 음악들을 탄생시켰고, 전통 악기와 서구 악기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색채감을 드러냈다. 현재 안데스 지역의 대표적인 악기로는 단소인 케나(quena)와 팬파이프 시쿠(siku), 계량 기타와 하프인 차랑고(charango)와 아르파(arpa), 그리고 타악기 봄보(bombo) 등으로서, 이들 간의 독특한 어우러짐은 볼리비아를 대표하는 그룹 로스 카하르카스(Los Kjarkas)의 연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로스 카하르카스의 ‘눈물을 흘리며 떠났네’는 1981년 첫 번째 앨범인 <동네 아낙에게 부르는 노래(Canto a la mujer de mi pueblo)>에 수록되었다. 인디안 민요 풍의 소박한 선율에 스페인어 가사를 덧붙인 이 노래는 그룹의 리더인 곤잘로 에르모사(Gonzalo Hermosa)에 의해 볼리비아의 전통 춤곡인 사야(saya) 스타일로 애절하게 작곡되었다. ‘눈물을 흘리며 떠났네’와 ‘사랑과 자유(El amor y la libertad)’, ‘결국(Al final)’, ‘작은 사랑(Pequeño Amor)’ 등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로스 카하르카스는 자유롭고 남성적인 가창 스타일과 풍부한 악기 편성, 독보적인 앙상블로 남미와 미주, 유럽과 아시아 시장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이들은 60년대 중반에 결성된 뒤 40년을 훌쩍 넘긴 최장기 그룹으로서,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지속적으로 충원하며 안데스 음악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상 사야, 툰투나(tuntuna), 와이노(huayno), 카르나발레스(carnavales) 등 안데스 민속음악의 재발견은 이들의 활동에 말미암으며, 이는 라틴 아메리카 음악의 부흥에 초석이 된 “누에바 칸시온(Nueva cancion)” 운동의 일환으로 인정받고 있다.

1990년부터 카하르카스의 ‘눈물을 흘리며 떠났네’는 42개국의 언어로 개역되어 불리고 있다. 이로 가파르고 척박한 고원을 일구던 인디오의 숨결이, 약자의 온유한 저항이, 모두에게 전해진 셈이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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